中企직원들 "잘릴 각오로 육아휴직"…대체인력 없어 회사도 난감
스마트폰 부품업체 대표 김모씨는 올초 연구개발부서의 한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한 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회사 설립 20여 년 만에 남녀를 통틀어 첫 육아휴직 신청자다. 오는 5월까지 대체인력을 구해야 해서 인력 채용 공고를 냈지만 두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김씨는 15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뜩이나 중소기업 인력난이 심한데 휴직자 업무를 대체할 사람을 뽑으려니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느낌”이라며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한동안 회사 업무가 지장을 받을 텐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털어놨다.

대체인력을 구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대체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휴직자가 업무에 복귀했을 때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김씨는 “중소기업은 보통 업무별 담당자가 한 명인 경우가 많다”며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엔 직원 한두 명 늘리는 것도 큰 부담”이라고 걱정했다.

◆일·가정 양립도 빈부격차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내놓고 있지만 중소기업 경영진과 직원들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2022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5~9인 사업체에서 ‘필요한 사람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7.8%에 불과했다. 중소기업 직원 두 명 중 한 명이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필요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95.1%에 달했다.

중소기업은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단축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항목에 ‘대체인력을 찾기 어렵기 때문’(22.7%)이라고 답했다. 반도체 장비업체 넥스틴의 박재훈 대표는 “연구개발직이나 기술직 분야의 전문 인력은 정규직을 원하지 파트타임을 찾지 않는다”며 “얼마 전에도 육아휴직자가 생겨서 대체인력을 구하려 했지만 계약직으로 오려는 사람이 없어 정규직으로 채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육아휴직자가 생겼을 때 사람을 채용할 형편이 안 되는 영세 중소기업이 수두룩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육아휴직 시 필요한 대체인력을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유명무실하다”고 평가했다. 고용부가 주관하는 취업지원시스템 인재채움뱅크가 대표적이다. 인재채움뱅크는 정부가 미리 대체인력을 확보해 두고 있다가 기업에 인원 수요가 생기면 즉시 맞춤형 인재를 추천해주는 지원 시스템이다. 하지만 취업 희망자가 인재채움뱅크에 등록할 유인이 별로 없어 대체인력풀이 크지 않다. 2022년 인재채움뱅크 이용 실적은 4215명. 중소기업 육아휴직자 수가 연간 7만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인재채움뱅크 존재조차 모르는 사업주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육아휴직=경력단절’ 공식 깨야

중소기업 직원이 육아휴직을 이용한 뒤 업무에 온전히 복귀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부에서 제출받은 ‘기업 규모별 육아휴직 고용 유지 현황’에 따르면 2022년 7월 기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육아휴직을 이용한 직원이 1년 이내 회사를 계속 다니는 비율은 71.1%였다. 중소기업 육아휴직자 10명 중 3명은 1년 이내 회사를 그만둔다는 의미다. 반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 유지율은 88.0%에 달했다.

현재 국내 중소기업 종사자는 전체 근로자 수의 80%가 넘는다. 중소기업 직원의 일·가정 양립 없이 저출산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사회수석을 지낸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기업이나 공무원과 달리 중소기업은 제도가 있어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며 “육아휴직 등에 따른 대체인력 비용을 정부가 과감하게 지원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