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코스피지수는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에 힘입어 0.94% 오른 2718.76에 마감했다. 코스피지수가 2700선을 넘은 건 1년11개월 만이다.  /임대철 기자
14일 코스피지수는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에 힘입어 0.94% 오른 2718.76에 마감했다. 코스피지수가 2700선을 넘은 건 1년11개월 만이다. /임대철 기자
“외국인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매일 밤 전화를 받습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생각보다 상당해요.”(목대균 KCGI자산운용 대표)

“한국 증시가 일본처럼 레벨업할 것이란 시각이 많아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는 일단 사두자는 분위기입니다.”(이세철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리서치센터장)

14일 코스피지수가 2700을 돌파한 직접적 원인은 국민연금공단 등 연기금들의 등판이다. 하지만 연초부터 따져보면 외국인이 유례없는 규모로 국내 주식을 사들인 것이 가장 큰 동력이 됐다. 정부가 주주환원 강화 정책에 팔을 걷어붙인 데 이어 상속세 등 세제 인센티브와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 가능성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한국 증시가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 대표는 “이 동력을 잘 살리면 그동안 변방에 있던 한국 증시가 중심부로 옮겨가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저PBR 테마가 불붙였다

저PBR주 쓸어담는 외국인…"韓 증시, 일본처럼 레벨업 할 것"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 들어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2조204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1998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뒤 사상 최대 규모다.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는 뜻밖이란 평가가 많다. 올해 초만 해도 한국 증시엔 비관론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5년 만에 일본에 뒤졌고, 기업의 실적 전망은 계속해서 낮아졌다. 올 1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기술주 랠리가 펼쳐졌지만, 한국 증시만 소외되기도 했다.

반전의 계기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었다. 1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운을 뗀 뒤 금융당국의 세부안은 급물살을 탔다. 이는 지난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JPX)의 상장사 저평가 개선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989년 거품경제 시절을 넘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는 “과거 일본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을 때 많은 외국인이 의심하다가 투자 기회를 놓쳤다”며 “한국 시장에선 먼저 올라타겠다고 작정하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펀드매니저들이 한국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에 큰 관심을 보였다”며 “이들이 자신이 몸담은 외국계 기관을 설득해 한국 증시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정부도 ‘밸류업 세일즈’에 나서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주관으로 열린 한국 시장 관련 기업설명회(IR)에 참석한 기획재정부 고위급 관료는 “밸류업 프로그램 등 정부의 증시 활성화 노력은 일회성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관 자금 가세, 연내 3000 갈까

실제 외국인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낮은 저평가 종목을 ‘입도선매’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종목만 편식하던 과거와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올해 가장 많이 사들인 10개 종목 중 현대자동차(PBR 0.73배), 삼성물산(0.86배), KB금융(0.64배), 우리금융지주(0.37배), 삼성생명(0.81배) 등 절반이 PBR 1배 이하였다.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도 한국 증시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성장 기대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세계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다. 외국인은 올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2조931억원, 1조1243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최근엔 한동안 국내 증시를 외면하던 기관도 매수세에 가세했다. 연기금은 이날 273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일간 기준으론 2년3개월 만의 최대치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는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지수를 조만간 발표하고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나오면 기관 자금이 쏟아져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김익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