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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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 산업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보험사들은 설계사 조직 확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상품 개발이나 판매채널 혁신은 뒷전이다. 보험사 간 ‘설계사 쟁탈전’에 목을 매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출혈 경쟁이 부메랑이 돼 고객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당국이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 넘은 설계사 영입 전쟁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대형 생명보험사의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GA)은 설계사 영입 과정에서 기존 연봉 2억원 외에 1억원의 스카우트비를 제시했다. 5000만원은 일시금으로 주고 5000만원은 1년간 분할 지급하는 형태다. 이 GA는 타사 설계사가 경력자 리크루팅 세미나에 참석만 해도 10만원을 지급하며 공격적인 영입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AIA생명의 자회사형 GA가 연봉의 두 배를 정착지원금으로 지급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2억에 1억 더"…설계사 쟁탈전에 보험혁신 뒷전
지점이나 본부급 단위 이직도 늘어나고 있다. 수십 명의 설계사가 한 번에 이동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부산의 GA 스카이블루에셋은 지난해 하반기 삼성생명 출신 지점장과 설계사 90여 명을 무더기로 영입했다. 앞서 대형 GA들은 과당 경쟁 예방을 위한 자율협약을 맺었는데, 스카이블루에셋이 이를 깨고 거액의 스카우트비를 지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율협약은 강제성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보험사와 GA들이 설계사 영입에 목을 매는 이유는 생명보험 산업의 성장 정체와 무관하지 않다. 업황이 정체된 상황에서 실적을 개선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설계사 조직 확대이기 때문이다. 대면 영업 비중이 99%에 달하는 업계 특성상 설계사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매출과 직결된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들이 고객과의 접점을 확보하기 위한 혁신 노력보다는 설계사 채용과 영업조직 유지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경쟁 과열로 영업조직 운영 비용만 늘어나고 시장 효율성도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객 피해 전가” 우려

문제는 불완전판매와 부당 승환계약이다. 승환은 설계사가 기존 회사에서 모집한 고객 계약을 다른 보험상품으로 갈아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설계사들은 이직 후 3년 내 스카우트비만큼 신규 계약을 따내야 한다. 설계사들이 스카우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고객에게 손해인 부당 승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삼성생명에서 스카이블루에셋으로 이직한 설계사 6명은 퇴사 전후 한 달 동안 고객 계약 138건을 무더기 해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 벌어진 단기납 종신보험 출혈 경쟁 역시 설계사 영입 전쟁에서 촉발됐다는 분석이다. 설계사들이 스카우트비를 받은 만큼 실적을 내기 위해 고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단기납 종신보험을 팔았다는 것이다. 대형 생보사 임원은 “설계사 스카우트 과당 경쟁을 해소하지 않는 한 제2의 단기납 종신보험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스카우트 과당 경쟁이 수십 년간 반복돼온 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GA·보험사 간 동일 규제 적용 △설계사 이직 이력·승환율 공개 △설계사 수수료 분할 지급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금융당국도 최근 보험업계 과당 경쟁 해소와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서형교/조미현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