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칼럼] K디스카운트 논쟁의 엉뚱한 결론
한국 주식의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쟁에서 정부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상장사가 현금만 쌓아놓고 주주에게 돌려주지 않아 주가가 낮게 유지되는 것이니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에 적극 나서라는 게 정부 논리다.

미국과 일본 증시가 역사적 고점 수준을 연일 경신하며 축포를 터뜨리는 사이 한국 증시만 맥을 못 추고 있으니 정부로선 초조하고 답답할 것이다. 1000만 주식 투자자의 불만을 달랠 변명과 타깃이 필요하긴 할 거다. 더구나 4·10 총선을 앞둔 시점이기도 하니….

정부는 지난주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이라는 걸 발표하고 상장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이복현 금감원장은 대놓고 으름장을 놨다. 주주환원 등 일정 조건에 못 미친 상장사에 거래소 퇴출이라는 강수를 두겠다고 했다.

정부가 벤치마크했다는 일본 역시 정부가 주주환원을 적극 유도하는 정책을 폈으니,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문제는 저평가 논쟁이 엉뚱한 결론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인데 정부라고 해서 모르진 않을 것이다. 정부가 상장사를 압박할수록 시장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두 집단이 있다.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과 슈퍼개미들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거래소 방문길에 이런 메시지를 던졌다. “대주주가 임명한 경영진이 소액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상법을 꾸준히 바꿔서라도 (그러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공교롭게도 적대적 M&A 세력, 슈퍼개미들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집단소송제도를 확대하는 등 대주주를 감시하는 법적·제도적 수단을 도입하자는 게 이들의 요구사항이다.

적대적 M&A 세력은 기업의 약점을 잡아 공격하는 걸 무기로 삼는다. ‘3%룰’ 같은 허점을 이용해 대주주를 무력화하기도 한다. 이들의 목적은 소액주주를 선동해 지지 세력으로 포섭한 뒤 경영권을 빼앗는 것이다. 그 뒤 수순은 뻔하다. 기업이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쌓아놓은 현금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빼먹은 뒤 되팔고 떠나는 먹튀다.

자본시장의 파수꾼을 자처한다는 슈퍼개미들도 다르지 않다. 자산을 많이 쌓아놓고 주주가치에 소홀하다는 걸 내세워 여론몰이로 상장사를 공격하지만, 실상은 경영을 잘하는 정상 기업을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온갖 트집을 잡아 기업의 단물을 빼먹고 뒤로는 치졸한 수법을 동원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이들에겐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찬스다. 잔치를 벌이고 마음껏 활약하도록 정부가 멍석을 깔고 날개를 달아주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장사를 압박하자 슈퍼개미들이 주류 언론에까지 얼굴을 내밀고 큰소리치며 마치 자본시장의 영웅이라도 된 듯이 우쭐대고 있다. 앞으로 국내 증시는 행동주의 펀드와 슈퍼개미들의 놀이터가 될 것이란 우려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부가 참고했다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닛케이지수가 사상 최고로 오를 수 있던 본질적인 동력은 기업들의 눈부신 실적이다. 엔저와 저금리를 배경으로 일본 제조기업이 경쟁력을 키운 결과다. 주주 친화 노력은 기업의 본질가치 증대에 따른 주가 상승세에 일조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 역시 AI발(發) 빅테크 기업의 실적 호조가 주가를 사상 최고로 이끌고 있다. ‘상장사 깜짝실적 비율(작년 4분기 기준) 미·일 79%·50% vs 한국 22%’, 이 숫자만큼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역시 정부가 기업 돈을 주주환원에 쓰라고 해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주가가 단기적으로 오를 수 있겠지만, 기업 금고가 화수분도 아니고 주가 부양을 위해 돈을 하염없이 쓸 수 있는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주가란 게 복잡한 변수에 의해 움직이지만 결국은 그 기업의 수익성, 성장성과 정비례한다. 경쟁력을 잃은 한국 기업이 다시 수익성과 성장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부가 먼저 할 일이다. 지금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쟁은 주가의 본질인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을 통째로 갉아먹는 엉뚱한 결론으로 치달을 공산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