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서울시의회의 난데없는 '새집 타령'
“시청 직원들이 현재 시의회가 쓰고 있는 서소문청사와 의원회관으로 들어오면 시청 청사 임차료를 줄일 수 있다.”

서울시의회가 지난달 29일 1200억원을 들여 공실인 서울 을지로 별관(옛 미국문화원) 부지에 22층짜리 신청사를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의회가 배포한 설명자료에 나온 내용이다.

이 자료가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 서울시 직원을 만나러 시청광장 앞 서울시청에 가면 헛걸음할 확률이 높다. 상당수 직원이 서소문1~2청사, 한국프레스센터, 더익스체인지서울 빌딩 등 주변 8개 건물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서소문2청사 등 4개 건물은 임차한 것이다. ‘셋방살이’하는 직원이 40%(약 2000명)에 달한다.

서울시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을지로 별관을 다시 쓰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자 서울시의회가 냉큼 숟가락을 얹었다. 그러면서 배포한 자료에서 ‘우리가 그리로 가고, 서울시 직원들은 의원들이 쓰던 곳을 쓰면 된다’고 한 것이다. 그야말로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논리다. ‘의원이 직원보다 상전’이라는 의식 없이는 나오기 힘든 행동이다.

물론 시의회도 공간 부족으로 인한 애로사항이 있다. 의회는 세종대로 본관과 서소문청사 1~2동에서 2만4072㎡를 쓰고 있다. 법정 면적(2만4930㎡)에 조금 못 미친다. “1935년 건립된 본관이 낡고 좁아서 새로운 본회의장이 필요하다”는 게 의회의 주장이다. 의회 소속 직원과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47%가 을지로 별관을 신축하는 안을 선호했다는 것도 근거로 들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애초 서울시 소유 자산이고, 서울시가 2013년까지 사용하던 을지로 별관을 시의회가 써야 한다는 데 불만이 적지 않다. 시의회가 을지로 별관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안에는 정작 시의회가 그 건물을 써야 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본회의장 건립 계획이 들어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시의회가 예산 심의권을 쥐고 있어서다.

시의회 새 본관 건립에 대한 결정권은 서울시장에게 있지만 시의회도 시장이 행정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자신들에게 협조해야 하는 줄을 잘 안다. 시의회가 이번에 검토한 안 중에는 기존에 쓰던 서소문청사 2동과 의원회관 앞에 본회의장을 만드는 안도 있다. 비효율을 줄이려면 차라리 흩어져 있는 시의회 시설을 서소문청사 쪽으로 모으는 이 안이 더 합리적이다. 임차 청사로 연간 250억원 넘게 지출하는 서울시와 자체 청사를 사용하고 있는 시의회 중 어느 쪽이 공간 확보가 더 급한지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무어라 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