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를 하고 “세계 각국 정부는 국제 표준을 자국 기업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 중”이라며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표준 분야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철 기자
조성환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를 하고 “세계 각국 정부는 국제 표준을 자국 기업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 중”이라며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표준 분야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철 기자
“미래 산업 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기업은 물론 국가의 생존이 달려 있습니다.” 한국인 최
"미래 기술 글로벌 표준 선점해야 국가·기업 생존 확률 높아진다"
초로 국제표준화기구(ISO) 수장으로 선출돼 올 1월 취임한 조성환 회장은 인터뷰 내내 ‘글로벌 표준 전쟁’을 강조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해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 자율주행의 핵심인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등 미래 기술의 표준을 무엇으로 하느냐를 두고 선진국의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국가 연구개발(R&D) 지원 체계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 표준을 잡을 수 있는 쪽으로 개편될 수 있도록 초석을 놓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한국을 ‘표준 대국’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포부를 들었다.

▷중국이 얼마나 적극적입니까.

“대단하죠. 원래 ISO 회장은 추대 형식으로 이뤄져요. 후보자 마감 직전에 중국이 후보를 내면서 선거를 치르게 된 겁니다.”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것입니까.

“중국은 표준의 힘을 잘 압니다. 2015~2017년 ISO 회장도 중국 출신이었어요. ISO 회장뿐만 아니라 중국 인사가 2020~2022년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회장도 지냈고, 같은 시기에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사무총장도 배출했어요.”

▷우리가 열세일 수밖에 없겠네요.

“중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과 함께 ISO 상임이사국입니다. 우리는 아니죠. 분담금과 정회원 가입 수, 기술위원회 간사국 수 등을 토대로 집계하는 ISO 국가별 활동 순위에서도 중국은 독일과 미국에 이어 3위에 올라 있습니다.”

▷선거를 예측하기가 힘들었겠습니다.

“ISO 회장은 127개 정회원국이 한 표씩 투표해 선출하죠. 미국도 한 표, 태평양의 조그만 도서국도 한 표입니다.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에서 중국이 일대일로(육·해상을 잇는 실크로드) 정책으로 영향력이 압도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쉬운 경쟁은 아니었어요.”

▷승리 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섰고,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모비스의 각국 지사 등을 통해 최대한 회원국을 접촉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총회에서 공식 연설 기회가 두 번 주어졌고 한국인의 밤 행사도 열었는데, 이때 기회를 잘 살린 것 같아요. 나중에 다른 회원국에 물어보니 중국보다 더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하더군요.”

이와 관련, 조 회장은 중국 후보보다 두 배 이상 득표하며 회장으로 선출됐다. 미·중 무역전쟁, 중국 일대일로 정책으로 인해 빚더미에 오른 개발도상국 사례 등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제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표준 전쟁은 어디에서 벌어집니까.

“우리 주변의 모든 게 표준입니다. 공기와도 같죠. 우리가 매일 쓰는 무게·거리 단위, 도량형, 콘센트, 전압 등을 넘어 휴대폰, 와이파이 방식, 건축 양식, 소화전, 하다못해 기업 경영 품질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도 표준으로 규정돼 있어요. 이렇게 마련된 ISO 표준이 2만5000개가 넘습니다.”

▷사활이 걸린 분야가 있을 텐데요.

“4차 산업혁명, 생물다양성, 공해, 기후변화 등 전 인류적인 과제도 결국 표준 전쟁으로 귀결될 겁니다. 탈탄소 정책만 해도 탄소를 어떻게 계측할 것인지가 중요하죠. 미래 전력 공급의 원천으로 떠오르고 있는 SMR을 만들 때 어떤 규칙을 적용할 것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AI 표준 싸움은 더 치열해질까요.

“AI산업과 관련해선 엄청난 표준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AI를 개발할 때는 물론이고, AI 생태계를 운영하는 방식과 관련해서도 모두가 따라야 할 규칙을 누가, 어떻게 만들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잘한 적이 있습니까.

“비디오 시절에 일본이 홀로 베타를 표준으로 밀다가 우리에 밀린 적이 있죠. VHS를 표준으로 삼은 한국이 비디오테이프 시장을 장악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5세대 이동통신(5G) 표준 특허의 3분의 1 이상을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건 위협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2003년 와이파이용 보안 표준을 정할 당시 중국은 ‘와피’라는 자국 기술을 의무화하려고 했다. 미국 정부가 즉각 반발하며 와피는 2010년에야 도입됐는데, 그사이 미국 인텔이 다른 기술을 개발해 무선랜 시장을 휩쓸었다.

▷표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산업 표준과 관련한 교육 여건이 열악합니다. 표준을 강의하는 대학이 몇 안 돼요. 표준에 대한 교육을 의무교육에 포함하고, 대학의 교양 과목에도 넣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해외 선진국은 어떻습니까.

“지난 1년 반 정도 당선인 신분으로 활동해보니 유럽과 미국의 힘이 표준업계에서 정말 크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표준 전문가를 만들어냅니다. 이들이 전 세계를 다니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자국에 유리한 표준이 제정되도록 하는 식이죠.”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한국에선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기술표준원 관료들이 표준 전문가 역할을 합니다. 1~2년마다 바뀌는 관료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요. 이런 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바람입니다.”

▷산업 현장은 낫지 않습니까.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표준을 담당하는 직원조차 없는 곳이 수두룩해요. 우리가 수출과 무역으로 먹고사는데 말이 안 되는 현실인 거죠.”

▷표준을 몰라서 피해를 볼 수 있겠군요.

“재료 표준, 장비 표준 등 모든 산업 현장엔 표준이 있는데, 중견·중소기업에선 거의 손을 놓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부품사가 엉망이면 대기업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겠죠. 결과적으로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집니다.”

▷국가 차원의 과제도 필요해 보입니다.

“멀리 보면 국가 R&D 지원 체계도 표준 중심으로 바뀌어야 해요. 민간 기업이 현장에서 뛰고, 국가출연연구소들이 이를 받쳐주는 구조를 형성해야 합니다.”

▷R&D 얘기를 좀 더 해준다면요.

“일례로 정부가 R&D 프로젝트를 할 때도 국제 표준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하는데, 한국에선 이런 개념 자체가 부족합니다. 평가에도 표준이 없고요. 이렇다 보니 정부 예산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국제 표준에 맞지 않아 사장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R&D 예산 논쟁과도 연결되네요.

“그렇죠. 애써 큰돈을 들였는데 기술이 사장돼버리니 예산 축소라는 발상이 나온 겁니다. 기술 정책과 R&D에 표준 개념이 정립되지 않으면 한국의 산업과 경제가 다음 먹거리로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장기적인 과제겠네요.

“1~2년 한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 로드맵을 세워서 정확한 평가와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체질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하죠. 우선 ISO 회장으로서 ‘표준대사’가 돼 기업의 참여와 지원, 관심 등을 이끌어내보겠습니다.”

▷중점 추진 사안은 무엇입니까.

“회장으로서 지속가능성을 표현하는 ‘ISO 2030’ 전략을 구현하고, 글로벌 위기 대응에 맞는 표준 정책을 만들겠습니다. 개도국의 참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조성환 회장은
엔지니어 출신 기술통…현대차그룹 CEO 두 번 지낸 '준비된 리더'

세계 최대 표준 기구인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세계 통상과 무역, 일반 산업의 보편 규범을 개발하는 역할을 한다. 1947년 설립돼 현재 167개 나라가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다.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태평양지역표준회의(PASC) 등 국제 표준 기구 중에서도 규모와 영향력 모두 가장 크다.

회장은 총회와 이사회 의장으로서 ISO의 정책과 전략, 논의 방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래 기술 표준 선점을 두고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 등이 ISO 회장직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인 최초로 ISO 수장에 오른 조성환 회장은 “ISO는 중립적인 기관”이라면서도 “한국이 ISO에서 선제적으로 정책·제도 제안을 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발판이 되겠다”고 했다.

조 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 내부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술통’으로 불렸다. 기계공학을 공부한 그는 스스로도 “엔지니어로서 살아온 삶”이라고 말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조 회장을 ‘준비된 리더’라고도 평한다. 2012년 현대차 미국기술연구소장, 2018년 현대오트론 대표이사와 현대모비스 사장을 거친 그는 최고경영자(CEO)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결정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회의 때마다 “반대의견이 없느냐”고 되묻고, 잘 모르는 분야는 실무자에게 전화해 물어보기를 서슴지 않았다.

조 회장의 선거 활동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항상 경청하고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통찰력이 번뜩이는 그의 리더십이 ISO 회원국의 신뢰를 이끌어냈다”고 했다.

■ 조성환 회장 약력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 기계공학 학·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기계공학 박사
△현대차 미국기술연구소장(전무)
△현대차 연구개발기획조정실장(전무)
△현대오트론 대표이사 부사장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부본부장(부사장)
△현대모비스 전장BU/R&D부문장(부사장)
△2021~2023년 현대모비스 사장
△2024년~ ISO 회장


김재후/빈난새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