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TSMC 새 회장의 첫 업무
앨런 조지 래플리 전 P&G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업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2000~2009년 CEO를 맡아 P&G를 경영 위기에서 구한 것은 물론 세계 최대 생활용품 기업으로 키워냈다. CEO 첫날 그의 모습은 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다. 주요 임원 6명의 실적을 보고받으면서 후계자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래플리는 업무 시간의 절반 정도를 미래 리더를 발굴하는 데 썼다고 하는데, 그만큼 후계자 육성을 중시한 사람이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다. 잭 웰치의 후계자 발굴 과정은 7년 정도가 걸렸다. 최초 22명을 선정해 그중 6명을 ‘가능성이 가장 큰 팀’, 4명은 ‘뚜렷한 가능성을 보이는 팀’, 나머지 12명은 ‘관망팀’으로 분류했다. 6년 이상 관찰한 뒤 최종 후보 3명을 추렸는데, 의외로 전원 관망팀에서 나왔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의 경영 승계 과정도 긴 안목을 갖고 진행된다. TSMC는 류더인 회장 겸 CEO, 웨이저자 CEO 등이 공동 경영 체제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류 회장이 물러나고 웨이 CEO가 회장을 겸직하기로 했다. 오는 6월 회장에 취임하는 웨이는 얼마 전 내정되자마자 후계자를 지명하는 일부터 했다. 두 사람의 수석부사장을 미래 지도자로 낙점하고, 그들의 경영 수업 프로그램까지 마련했다. 향후 10년간 반도체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진 개편이라는 것이다.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장중머우)은 첫 번째 후계자를 경질하는 시행착오를 거친 뒤 류더인과 웨이저자 두 엔지니어로 집단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모리스 창이 이들에게 제시한 리더십 요체가 ‘기식(器識)’이다. 기는 그릇으로 품성을, 식은 통찰력을 의미한다. “(리더)는 경쟁자에게 두려운 존재여야 하고, 고객에겐 신뢰를, 협력업체에는 훌륭한 파트너가 돼야 한다. 주주에겐 좋은 투자 수익처, 직원에게는 도전 정신을 갖춘 양질의 일자리 공급처, 사회적으론 선량한 공민이 돼야 한다.” 플라톤의 철인을 연상케 하는 이상적 인간형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