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대청봉에 오른적 있다. 스물하나였고 겁도 없었다. 설악산이 얼마나 높은지 얼만큼 힘든지 전혀 몰랐다. 그랬으니 겁도 없이 청바지에 납작한 운동화를 신고 동네 뒷산 오르듯 갔겠지. 오색 약수 코스는 대청봉으로 오르는 비교적 짧은 코스였지만 초심자에겐 에베레스트였다. 가파르고 험준하고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ㅡ아직 멀었어요?
ㅡ요 고개만 넘으면 돼!
ㅡ얼마나 남았어요?
ㅡ딱 10분만 더 가면 돼!


함께 간 산악부 선배들은 거짓말을 잘했다. 고개를 넘고 넘어도 산길은 끝나지 않았고, 나는 울고불고 급기야는 드러누워버렸다. 나를 버리고 가라며 넙적 바위 위에 기절한 척 큰대자로 퍼졌다. 선배들은, 지금 생각하니 기껏 스물몇살 거기서 거기일텐데, 진지하게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더니, 그래,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하자며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작은 텐트에 여자 두명, 큰 텐트에 남자 다섯명. 막무가내 후배 하나 때문에 산비탈길에 급하게 집을 지은 셈이다. 김치찌개 하나 끓여 나눠먹던 설익은 밥, 밥먹던 그릇에 타마시던 커피, 흐릿한 손전등 아래 싱그럽던 젊은 얼굴들.

그 다음날도 상황은 비슷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마는 아무리 기어올라도 봉우리가 계속 나타났다. 중간에 또 몇번 나는 못간다 드러누웠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정말 겨우 간신히 드디어 올랐다. 대청봉. 해발 1708미터. 우리나라 명산중의 명산 설악산 꼭대기. 조금 전까지 가네 못가네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거센 산정상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믿을 수 없을만큼 웅건한 풍광에 압도되며 걷잡을 수 없는 생의 환희에 차올라 소리 질렀다.

ㅡ너무 너무 아름다워요! 이 풍경은 평생 못 잊을거예요!

그리고 실제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풍경, 그 순간의 감격, 아로새긴듯 또렷하다.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구비구비 발아래 비단처럼 펼쳐져있다. 봉우리 가운데 걸린 하얀 모시옷은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동해 바다, 하얀 포말이 실타래처럼 풀리고 있다. 그 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아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 같다.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분명 꼭대기에 다다랐는데, 하늘 가장 가까운데서 세상을 내려다보는데, 이상했다. 마음은 한없이 낮아졌다. 정상에 한번 올라보겠다고 죽을 똥 살 똥 올라왔는데, 기어이 내가 정복했다! 야호!를 외치며 축배를 들판인데, 이 거대한 자연 앞에, 위대한 우주 앞에 가만히 엎드리는 마음, 경외감. 미미한 존재일지언정 살아있다는 기쁨과 감사가 흘러넘쳤다. 이후로도 그 감흥에 중독되어 지리산, 덕유산, 치악산 등 힘들어 죽겠다고 울면서도 기어이 산에 올랐다. 학교에서보다 그 어디서보다 더 많은 걸 배우는 기분이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방의걸 특별전 <상생의 결>전이 열리고 있다. 방의걸 작가의 화업 인생 60년을 기리는 것이기도 하고, 먼저 전시를 본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해서 꼭 가보리라 다짐한 전시였다. 서예박물관 1,2,3관을 다 채운 전시를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와! 어! 하! 감탄사가 쉴새없이 이어졌다. 방의걸 작가의 크고 높은 '산' 앞에서 기억 저편에 있던 설악의 젊은 나를 데려왔다. 넓고 깊은 바다 '해맞이' 앞에서 물길을 내는 우리를 길어올렸다. 어쩌면 최근의 화려한 그림 동향에 비해 이 작품들은 단조롭고 평평한 옛그림에 가깝다. 그런데 감흥은 납작하지 않다. 그림은 생의 한장면을 고스란히 환기시키며 까맣게 잊고산 깊은 통찰을 단번에 깨우쳐준다. 자연의 압도적인 숭고미 앞에 낮아지던 마음, 비워지던 고민, 생의 겸손과 감사를 깨닫던 순간들.
그림엔 많은 색이 필요하지 않다, 인생에 많은 사람이 필요없듯이
그림엔 많은 색이 필요하지 않다, 인생에 많은 사람이 필요없듯이
전시장 가장 안쪽, 방의걸 작가의 영상을 보는데 내내 뭉클하다. 세속의 나이는 생의 표정을 이기지 못하는구나. 빗소리에 잠들던 유년과 그 빗소리를 그리는 지금이 너무 즐겁다고 웃는 작가의 얼굴은 소년처럼 해맑고 따뜻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표정은 언제나 감동이다. 살아보니 인생 도처에서 크고 작은 산을 만난다. 일, 사람, 관계 어디서든. 그럴때면 그때의 마음, 산에 오르고 오르던 마음을 떠올린다. 처음 산 앞의 무모한 마음, 힘들어도 끝끝내 오르던 마음, 그리고 굽어보며 낮아지던 산 위의 마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태도가 다 들어있지 뭔가. 그 때 설악에는 발톱 두개를 내어줬다. 보라빛 발톱을 본 선배가 말했다.
그림엔 많은 색이 필요하지 않다, 인생에 많은 사람이 필요없듯이
ㅡ 괜찮아, 아픈 건 지나갔어. 새발톱이 나올테니 걱정마.

전시에서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그때 우린 설악에서 내려와 동해로 갔었다. 뜨거운 발을 바닷물에 담구며 신나게 놀았다. 그 바다가 전시장에 짙푸르게 출렁인다. 나 잡아봐라 겅중겅중 뛰던 빨갛게 그을린 선배의 얼굴이 보인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야 분홍 살코기를 들어보이던 선배의 웃음이 보인다. 그 때 우린 한물길로 흘렀고 함께 바다에 다다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각자의 물길로 흩어져 먼바다로 나갔다. 지금쯤 작은 섬에 다다랐을까. 철없는 후배는 산에서의 만행이 민폐인줄도 몰랐다. 다정하게 이끌어주던 손이 사랑인줄도 몰랐다. 고맙고 아름다운 젊은 그들에게 마음을 전할 길이 없다.
그림엔 많은 색이 필요하지 않다, 인생에 많은 사람이 필요없듯이
이번 전시는 음악과 그림과 문장이 어우러져 작정하고 마음을 건드린다. 잘 살아낸 인생의 어른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어렵거나 무거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생의 모든 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는 걸, 삶이라는 봉우리를 한껏 누리고 즐기며 천천히 올라가도 된다는 걸 깨닫는다.

그림에 많은 색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생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듯.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고 그러니 싱긋 웃으라고 노화가가 가만히 가만히 말해주는 것이다.
그림엔 많은 색이 필요하지 않다, 인생에 많은 사람이 필요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