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의 작은 마을에는 새벽처럼 고요하고 차분한 집, 서로재가 있다. 닫힌 듯 열려 있고, 채워진 듯 비워진 공간이 선사하는 마법 속으로.
서로재의 외관. 주차공간의 반복된 나열이 계단을 눕혀놓은 듯한 조형미를 연출한다. 사진=김동규
서로재의 외관. 주차공간의 반복된 나열이 계단을 눕혀놓은 듯한 조형미를 연출한다. 사진=김동규

풍경의 조율

서로재는 강원도 고성군 삼포리의 작은 마을에 위치해 있다. 녹음이 가득하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마주치는 곳이다. 근경으로 군집한 소나무 숲과 오래된 느릅나무 한 그루가 있고, 원경으로는 멀리 설악산의 중첩된 풍경이 펼쳐져 자연을 오롯이 품고 있다.
투숙객을 위한 차실에서는 군집한 장송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김동규
투숙객을 위한 차실에서는 군집한 장송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김동규
‘쉼’을 주요 모티브로 생각하는 숙박시설의 특성을 고려해 건축가는 시간을 두고 이곳을 몇 차례나 방문했다. 오랜 시간 지긋이 대지를 느끼며 장소를 탐색했다. 자연은 그 자체로 대지가 가진 가능성이자 건축과 연결되는 맥락이기에 이를 조율하는 방법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연속성을 가진 시각적 시퀀스를 만들었고, 건축은 풍경을 위한 장치로서 작동하게 했다. 그들은 이 과정을 ‘풍경의 조율’이라 말한다.

시퀀스와 스케일의 전환

서로재의 여정은 거친 콘크리트 구조체 사이에 있는 좁고 어두운 진입로에서 시작된다. 폭 1.5m의 진입로는 천장 주변에서 흘러내리는 빛과 발아래 사각거리는 쇄석 소리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그 끝에 들어서면 군집된 소나무들과 자연을 비추는 작은 수공간이 드러난다.

ㄱ 자로 배치된 객실에 의해 생긴 두 개의 막다른 골목(복도) 끝에는 라일락과 느릅나무가 그 자태를 뽐낸다. 도로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 선형으로 배치된 도로-담장-객실은 자연스레 긴 동선을 만들고, 다시 작은 복도를 지나 각 객실의 내부공간으로 연결된다.
서로재의 공용 마당 뒤로 노을이 지고 있다. 사진=김동규
서로재의 공용 마당 뒤로 노을이 지고 있다. 사진=김동규
경사진 도로에서 보는 외벽은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지지만, 입구를 지나면 2.4m 높이의 낮은 처마와 이를 받치고 있는 따뜻한 느낌의 나무 기둥이 안정감을 선사한다. 시퀀스와 스케일의 전환이 만든 정서적 공간감이다.

마음을 채우고 일상은 비워낸다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건축물의 주재료에 대한 고민은 설계 단계부터 시작됐다. 나무·돌 같은 재료도 고려했지만, 내구성과 지속성을 생각해 노출콘크리트를 택했다. 노출콘크리트가 주는 무게감은 유지하면서도 차갑고 매끄러운 느낌을 상쇄하기 위해 치핑(콘크리트 표면을 거칠게 만드는 기법)했다. ‘골재를 어느 정도 드러낼 것인가’ 수차례 테스트를 거친 끝에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적당히 거친 표면이 완성됐다.
다다미가 깔린 비움 1호의 다도 공간. 사진=김동규
다다미가 깔린 비움 1호의 다도 공간. 사진=김동규
내부는 객실에 따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먹색으로 염색한 나무가 주재료로 사용된 ‘채움’동은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두운 재료는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설악산 풍경에 집중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비움’동은 밝은 참나무의 색과 다양한 높이의 천장을 활용해 풍성한 공간감을 느끼도록 연출했다. 마음의 공백을 채우고, 분주하던 일상을 비우는 공간은 이렇게 탄생했다.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타다

설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기존에 자리한 자연요소를 존중하는 것. 나무들은 건축물 사이에 배치한 작은 외부공간에 경치를 만들고, 빛·그림자는 계절과 시간을 풍성하게 그려낸다. 건축물에 가려 보이지 않던 풍경은 객실에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창을 통해 드러난다.

무심하게 펼쳐진 노출콘크리트 외관을 지나 마주하는 소나무 마당과 설악산의 풍경, 아름다운 산세가 중첩된 원경은 ‘풍경의 위계’가 만들어낸 따뜻함이다. 이 풍경의 위계를 눈에 담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어 이곳에서의 1박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열게 된다. 건축과 자연이 주는 대척점의 감각을 공유하는 장소, 그곳이 서로재다.
다다미가 깔린 비움 1호의 다도 공간. 사진=김동규
다다미가 깔린 비움 1호의 다도 공간. 사진=김동규

카인드 건축사사무소

건축가 이대규와 김우상은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 소재의 MESH ARCHITECTURES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이후 이대규는 ㈜현대종합설계건축사사무소에서, 김우상은 hANd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카인드 건축사사무소의 공동대표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건축을 구성하는 다양한 유형에 대해 탐구한다. 2022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으며, 대표작으로는 7377house, 서로재, bended house, 차실 몽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