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핵심기술 중국에 넘겼다"…산업스파이 판치는 이유 [지정학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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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 포커스
방산·반도체 기술 탈취 심해지는데
시대 뒤처진 '간첩법'
방산·반도체 기술 탈취 심해지는데
시대 뒤처진 '간첩법'
#. 최근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자료를 유출하려다가 적발된 사건이 수사 당국에 적발됐다. 방위사업청·국군방첩사령부·국가정보원 등으로 구성된 합동 조사단은 인도네시아 국적 연구원 A씨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다. KF-21 관련 기술은 국내 항공·무기 기술을 집약한 첨단 기술이지만, 수사당국은 간첩죄 대신 '방산기술보호법' 적용 여부만 판단하고 있다.
최근 국내 방위산업 및 반도체 등의 첨단 기술을 유출하려는 산업 스파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수법이 복잡·교묘해지고 있지만 국내 법 규정이 이에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대만·영국 등 선진국들이 최근 자국 산업기술의 보호를 위해 산업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와 같게 처벌하고 있는데, 국내 법은 이같은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음에도 계류 상태로 폐기 위기에 놓여있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기술 유출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게 국내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인수합병(M&A)를 이용하거나 반도체 등 공동연구를 빙자한 기술탈취, 리서치·컨설팅 업체를 통해 기술자료를 수집하는 일도 생겼다. 반도체 팹리스(설계) 분야에선 한국에 회사를 설립하고 한국 엔지니어를 고용해 필요한 설계 기술을 가져가기도 했다.
첨단 기술의 해외 유출로 피해가 확산되면서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경찰청 방첩경제안보수사계 등에서 기술 유출 범죄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란 평가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여전히 집행유예나 1~2년 실형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포스코 핵심설비 도면을 빼돌린 업체 대표와 반도체 핵심 기술을 국외 경쟁사에 유출한 전직 삼성전자 엔지니어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전 삼전 엔지니어의 경우 2심에서 실형으로 가중됐지만, 형량은 1년 6개월에 그쳤다.
2022년 11월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항공기술을 탈취하려 시도하다가 체포됐다. 미 연방법원은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피해 회사에 끼치려 한 피해액을 감안해 '240개월(20년)' 중형을 선고했다.
또 2021년 코카콜라 직원 출신이던 중국계 미국인이 코카콜라의 코팅제 기술을 빼돌려 중국의다른 회사와 합작해 새로운 기업을 만들려 했다가 적발된 사건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사건에서 미국 연방법원은 EEA 등 혐의로 168개월(14년)형 및 20만 달러(한화 2억66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대만의 경우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규정했다. 이 법에 저촉되면 최대 징역 12년, 벌금 1억 대만달러(약 42억원)로 강력 처벌한다. 특히 국가핵심기술 침해 사건의 경우 전문 검사·수사관들이 배치된 대만고등검찰청이 직접 1심 법원에 기소해 소송 신속성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작년 말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을 제정, 공포했다. 이에 따르면 보호되는 정보의 획득 또는 공개, 영업비밀의 획득 또는 공개, 외국정보기관 지원 등 3가지 종류의 간첩범죄(New espionage offences)를 규정했다. 국가적 보호가 필요한 정보를 불법 취득해 해외로 넘길 경우 "최대 종신형, 상한없는 벌금 부과"를 명시했다.
우리 형법은 1953년 제정된 이래 7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 개정도 이루어지지 않아, 간첩죄의 경우 우방과 적이 뚜렷이 구분되던 냉전시대의 적국 개념이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김영주 의원이 2022년 적국은 물론 '외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외국 간첩 처벌법)을 발의했고,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여야의 정쟁 속에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지 여부는 미지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4일) '외국 간첩 처벌법'에 대해 “중요한 정책 이슈”라며 “4월 총선에서 승리해 먼저 처리해야 할 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법안 개정에 긍정적이다. 우리 형법은 1953년 제정된 이래 7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 개정도 이루어지지 않아, 간첩죄 역시 냉전시대의 적국 개념이 유지돼 왔다. 근래 들어 산업기밀이 해외로 계속해서 유출되고 있음에도 간첩죄가 아닌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로만 적용돼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적재산권 관련 국내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형법 98조 제1항 해석에서 국가기밀을 탐지 및 수집하는 행위를 간첩행위로 보고 있고, 2항의 누설행위는 군사기밀을 갖고 있는 자가 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 굉장히 간첩행위 규정이 좁다"며 지적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최근 국내 방위산업 및 반도체 등의 첨단 기술을 유출하려는 산업 스파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수법이 복잡·교묘해지고 있지만 국내 법 규정이 이에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대만·영국 등 선진국들이 최근 자국 산업기술의 보호를 위해 산업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와 같게 처벌하고 있는데, 국내 법은 이같은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음에도 계류 상태로 폐기 위기에 놓여있다는 평가다.
M&A·공동연구 빙자 등 '기술탈취' 수법 다양화
5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정보원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기술 해외유출은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20건 △2023년 23건 등 총 96건 발생했다. 유출 산업기술 중 국가핵심기술은 33건이었다. 국가핵심기술은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반도체 등 13개 분야에서 정부가 지정·관리하는 기술이다. 유출 기술 세 건 중 한 건은 국가핵심기술인 셈이다. 현재 국내기술 유출은 중국을 통해 상당수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가장 흔한 방식은 고급 기술자에 접촉해 "기존 연봉의 3~9배를 주겠다"며 데려가는 경우다. 대기업의 협력업체를 활용해 기술 유출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2018~2020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SEMES)의 반도체 핵심기술을 취득해 중국에 넘긴 협력업체 대표가 지난 1월 실형을 선고받은 게 대표적이다.최근에는 기술 유출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게 국내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인수합병(M&A)를 이용하거나 반도체 등 공동연구를 빙자한 기술탈취, 리서치·컨설팅 업체를 통해 기술자료를 수집하는 일도 생겼다. 반도체 팹리스(설계) 분야에선 한국에 회사를 설립하고 한국 엔지니어를 고용해 필요한 설계 기술을 가져가기도 했다.
첨단 기술의 해외 유출로 피해가 확산되면서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경찰청 방첩경제안보수사계 등에서 기술 유출 범죄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란 평가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여전히 집행유예나 1~2년 실형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포스코 핵심설비 도면을 빼돌린 업체 대표와 반도체 핵심 기술을 국외 경쟁사에 유출한 전직 삼성전자 엔지니어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전 삼전 엔지니어의 경우 2심에서 실형으로 가중됐지만, 형량은 1년 6개월에 그쳤다.
美·英·대만 "기술 유출 간첩죄로 처벌"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매우 엄격하게 다루고 있다.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센터에 따르면 미국은 국가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적발되면 '경제스파이법(EEA·Economic Espionage Act)'에 따라 '간첩죄' 수준의 처벌을 하고 있다.2022년 11월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항공기술을 탈취하려 시도하다가 체포됐다. 미 연방법원은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피해 회사에 끼치려 한 피해액을 감안해 '240개월(20년)' 중형을 선고했다.
또 2021년 코카콜라 직원 출신이던 중국계 미국인이 코카콜라의 코팅제 기술을 빼돌려 중국의다른 회사와 합작해 새로운 기업을 만들려 했다가 적발된 사건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사건에서 미국 연방법원은 EEA 등 혐의로 168개월(14년)형 및 20만 달러(한화 2억66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대만의 경우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규정했다. 이 법에 저촉되면 최대 징역 12년, 벌금 1억 대만달러(약 42억원)로 강력 처벌한다. 특히 국가핵심기술 침해 사건의 경우 전문 검사·수사관들이 배치된 대만고등검찰청이 직접 1심 법원에 기소해 소송 신속성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작년 말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을 제정, 공포했다. 이에 따르면 보호되는 정보의 획득 또는 공개, 영업비밀의 획득 또는 공개, 외국정보기관 지원 등 3가지 종류의 간첩범죄(New espionage offences)를 규정했다. 국가적 보호가 필요한 정보를 불법 취득해 해외로 넘길 경우 "최대 종신형, 상한없는 벌금 부과"를 명시했다.
'외국간첩 처벌법' 국회 계류…국힘 "중요 정책 이슈"
최근 국내에서도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에 대한 기준 강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유력히 논의되는 것은 '형법 98조 1항'의 수정이다. 이 조항은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간첩 행위의 대상을 ‘적국’으로 한정하다 보니 적국만 아니면 어느 나라에 국가기밀을 유출해도 처벌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우리 형법은 1953년 제정된 이래 7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 개정도 이루어지지 않아, 간첩죄의 경우 우방과 적이 뚜렷이 구분되던 냉전시대의 적국 개념이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김영주 의원이 2022년 적국은 물론 '외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외국 간첩 처벌법)을 발의했고,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여야의 정쟁 속에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지 여부는 미지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4일) '외국 간첩 처벌법'에 대해 “중요한 정책 이슈”라며 “4월 총선에서 승리해 먼저 처리해야 할 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법안 개정에 긍정적이다. 우리 형법은 1953년 제정된 이래 7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 개정도 이루어지지 않아, 간첩죄 역시 냉전시대의 적국 개념이 유지돼 왔다. 근래 들어 산업기밀이 해외로 계속해서 유출되고 있음에도 간첩죄가 아닌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로만 적용돼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적재산권 관련 국내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형법 98조 제1항 해석에서 국가기밀을 탐지 및 수집하는 행위를 간첩행위로 보고 있고, 2항의 누설행위는 군사기밀을 갖고 있는 자가 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 굉장히 간첩행위 규정이 좁다"며 지적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