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서 무신사로 간 이 남자, 2600명 사내변호사 이끈다
국내외 규제가 복잡·다양해져 기업의 리스크 관리 역량이 중요해질수록 ‘몸값’이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내 변호사들이다.

지난달 한국사내변호사회 신임 회장에 오른 이재환 무신사 리스크매니지먼트(RM) 본부장(사진)은 25일 인터뷰에서 “기업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못 하면 기업가치의 약 10~20%는 순식간에 까먹을 수 있다”며 “기업의 성장 뒤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게 사내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법무 영역만 하는 변호사는 인공지능(AI)에 대체될 수 있다”며 “계약서 처리는 AI가 더 잘할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 컴플라이언스, 대관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강점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법대 98학번인 이 회장은 2003년 사법시험(사법연수원 35기)에 합격하고 금융·부동산 전문 로펌 에버그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에버그린이 법무법인 세종에 편입된 이후 공정거래 업무를 주로 맡았다.

10년 넘게 로펌 변호사로 일한 그는 2018년 e커머스 플랫폼 위메프를 거쳐 2021년 패션스타트업 무신사로 옮겼다. 처음엔 ‘대형 로펌에서 왜 스타트업으로 가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점차 기업 진출을 원하는 변호사가 늘었다. 이 회장은 “검찰·법원은 물론 로펌도 예전보다 못한데 사내 변호사의 위상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대형 로펌에서 매년 수십 명씩 사내 변호사로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발족한 한국사내변호사회는 10여 년 사이 회원이 570명에서 2612명으로 네 배 넘게 증가했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사내 변호사도 많은 점을 고려하면 전체 사내 변호사 집단의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다. 이 회장은 “다양한 업무를 해볼 수 있는 것이 사내 변호사의 장점”이라며 “경영진으로 가는 변호사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쿠팡(강한승) 코웨이(서장원) 넷마블(김병규) 등의 기업이 법조계 출신을 대표로 선임했다.

이 회장은 2년 임기 안에 변호사·의뢰인 비밀보호권(ACP)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수사기관이 기업 법무실부터 뒤지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만 ACP를 도입하지 않았다”며 “기업 법무실이나 로펌을 압수 수색하는 건 해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커리어 고민이 많은 젊은 사내 변호사 대상 네트워킹과 이슈 대응을 위한 모임도 활성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