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배터리 회사인 중국 CATL이 최고경영진 지분을 조정했다. 중국 공산당 자문기구의 위원인 회장의 지분율을 낮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규제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완성차 ‘빅3’ 중 하나인 스텔란티스는 아예 중국 립모터스의 전기차를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美 IRA 규제 피하자"…회장 지분까지 낮춘 CATL
미 정부가 겹겹이 무역장벽을 쌓자 중국 기업들의 '우회 침투'가 본격화하고 있다. IRA 수혜를 노리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한국 전기차·배터리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22일 기업정보업체 크루그룹에 따르면 CATL은 최근 쩡위친 설립자 겸 회장과 리펑 부회장의 지분을 분리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쩡 회장은 리 부회장과 공동으로 CATL 지분 27.9%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번 작업으로 지분율이 23.5%로 낮아졌다. 크루그룹은 “IRA의 ‘해외우려단체(FEOC)’에 지정되지 않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했다.

미국 정부는 올해부터 FEOC가 생산한 배터리 부품을 장착한 전기차엔 IRA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중국 자본 또는 정부의 지분이 25%를 넘는 기업을 FEOC로 간주했다. 쩡 회장은 중국 정부 자문기구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어서 FEOC 규제의 칼날을 정통으로 맞을 위험이 컸다. CATL이 쩡 회장의 지분율을 25% 아래로 낮춘 이유다.

CATL은 미국에서 테슬라와 메르세데스벤츠 등에 배터리를 납품한다. 포드와는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도 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FEOC 리스크를 확실히 없애 미국에서 운신의 폭을 더 넓히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며 “한국 배터리업체로선 우려 요인”이라고 했다.

중국 배터리의 미국 진출은 막을 수 없는 추세가 되고 있다. 중국 BYD는 미국 자동차 부품사 보그워너와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북미와 유럽에서 상용차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중국 이브에너지와 궈시안도 각각 다임러트럭, 폭스바겐과 함께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을 짓는 중이다.

중국 전기차의 미국 상륙도 임박했다. 스텔란티스는 전기차 합작사인 중국 립모터의 전기차를 유럽과 북미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은 상당한 수준”이라며 “서방 정부가 중국 전기차의 진입을 막는다면 우리는 ‘버블 안에서’ 립모터를 조립해 팔 수 있다”고 했다. ‘버블 안’은 스텔란티스가 공장을 갖고 있는 미국과 유럽 지역으로 해석된다.

스텔란티스는 작년 말 립모터의 지분 21%를 사들이고 중국 외 지역에서 립모터 제품을 수출·판매·제조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이미 전기차 경쟁에서 뒤처진 상황에서 직접 개발을 사실상 포기하고 ‘립모터 위탁생산’을 자처한 셈이다.

빈난새/김형규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