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구마모토현의 TSMC 제1 공장이 오는 24일 준공식을 연다. 자국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과 대만 TSMC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노하우를 결합해 반도체산업을 재건하기 위한 신호탄이다. 이 공장은 2022년 4월 착공 후 준공까지 불과 20개월이 걸렸다. 보수적 관료주의로 유명한 일본 정부가 전례 없는 ‘일사천리 행정’으로 통상 5년이라는 팹 건설 기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반도체 왕국 재현’을 위한 일본의 집념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를 유치하기 위해 사상 최대인 12조원의 보조금 지원과 50년 이상 묶어둔 그린벨트 해제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구마모토현이 앞장서 공업용수와 도로 정비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도취한 탓일까.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경기 용인 SK하이닉스 공장은 2019년 2월 부지가 선정됐지만 다섯 차례 이상 착공이 연기된 끝에 이르면 내년에나 공사에 들어간다. 극단의 소극 행정 속에 환경 민원, 토지 보상, 용수 인프라 문제로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정치권은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인 K칩스법조차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10년 안에 일본 반도체산업이 다시 한국을 제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이제 반도체산업은 국가대항전으로 바뀌었다. 기존 3류 정치와 2류 행정으로는 글로벌 전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한국 반도체는 기로에 선 상황이다. 그동안 1위를 지켜온 메모리 분야에서 후발주자들의 거센 추격을 받는 동시에 4차 산업혁명으로 수요가 폭발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선 TSMC는 물론 후발주자인 인텔에도 갈수록 밀리고 있다. 정부는 622조원을 투입해 경기 남부 지역에 ‘세계 최대·최고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조성 목표 시기는 2047년이다. 일분일초가 숨 가쁜 반도체 전쟁에서 이런 속도로는 승리할 수 없다. 전략·용수 등 핵심 인프라를 조기 공급하고, 과감한 규제 혁파와 세제·금융 지원에 가속을 붙여야 한다. 정치도 더 이상 ‘재벌 특혜’라는 낡은 구호로 방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