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재계 인사이드] 포스코를 흔드는 '바람'의 정체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한글로 옮긴 단어의 어감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마치 ‘우유 빛의 사막’ 같았다. 사실 우유니는 사막이 아니라 거대한 소금 호수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기안84라는 예능인이 이곳을 탐방하면서 유명해졌다. 한국의 수많은 청년이 ‘기안84 루트’를 따라 우유니에서 인생 사진을 찍고 싶어 하지만, 이들보다 더 이곳을 갈망하는 이들은 따로 있다.

우유니 염호는 세계 최대 리튬 광산이다. 1만260㎡에 달하는 면적에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리튬이 묻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세계의 자원 부국으로 만든 석유에 비견할 만하다. 한때 바다였던 호수의 물이 약 4만 년 시간 동안 증발한 결과물이다.

리튬은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용 대용량 2차전지를 만들려면 리튬화합물은 필수다. ‘전기차 제국’으로 불리는 중국조차 리튬이 부족해 호주와 남미의 리튬 보유국에 끊임없이 구애의 신호를 보내고 있을 정도로 귀한 금속이다.

포스코는 'K배터리'의 동량

한국 기업 중 우유니 염원에 리튬 가공 공장을 짓겠다고 ‘불나방’처럼 덤빈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유럽 굴지의 자원 개발 회사를 비롯해 일본 스미토모그룹이 볼리비아 정부와 끝 모를 협상을 벌일 때 포스코도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다른 서방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포스코 역시 변덕스러운 볼리비아 정부와의 협상에서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박동휘의 재계 인사이드] 포스코를 흔드는 '바람'의 정체
하지만 포스코는 곧바로 아르헨티나의 다른 염호로 눈을 돌렸다. 2018년 3100억원을 투자해 살타주 소재 옴브레 무에르토 리튬 염호의 개발권을 확보했다. 인근에 연간 2만5000t 규모의 염수 리튬 1단계 상·하공정을 건설 중이다. 올해 준공이 목표다.

한국 배터리산업의 미래와 관련해 포스코의 역할은 ‘필수불가결’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코가 아니고선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 많다는 의미에서다. 자연 그대로의 리튬을 각종 화학 처리 과정을 통해 고순도 배터리급 리튬화합물로 만드는 일은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다. 리튬 채굴부터 가공까지 수직계열화에 성공한 기업들만의 ‘승자독식’ 시장이다. 현시점에서 승자는 세계 1위인 간펑리튬을 비롯해 텐치리튬, 성신리튬 등 중국 기업들이다.

허울뿐인 '글로벌 스탠더드'

배터리 소재 산업에서 수직계열화를 달성하려면 엄청난 투자금과 노하우가 필수다. 거의 맨땅에서 한국 철강산업을 일으켰으며, 자원 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포스코그룹이 아니고선 감당하기 쉽지 않은 도전이다.

포스코는 철광석 원광을 대규모로 들여와 고순도 철강재를 만드는 일을 약 50년간 해왔다.

포스코그룹의 차기 회장 후보가 정해졌다. 사외이사의 ‘해외 호화 이사회’ 논란이 불거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포스코로선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외부 세력’ 개입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번 회장 선임 과정에서의 소동을 외풍 문제로만 치부해선 곤란하다.

포스코가 ‘정도 경영’의 길을 걸었더라면 아무리 외풍이 거센들 바람 샐 틈이 없었을 것이다. 포스코 같은 소유분산 기업은 대주주가 확실한 다른 상장사보다 훨씬 더 엄정하게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주인 없는 회사의 대리인 문제가 언제든 또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철강 신화를 이룬 포스코가 한국 배터리산업의 동량으로 커갈 수 있느냐는 오로지 포스코 임직원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아무리 번드르르한 글로벌 표준의 지배구조를 표방한들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갈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