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건축' 리처드 마이어 건축 철학 반영…개관전 루치오 폰타나·곽인식展
'강릉의 새 랜드마크' 솔올미술관…"한국미술과 세계미술 연결"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의 강릉 교동 솔올 지역. 새로 단장한 교동7공원의 구불구불한 언덕 산책로를 오르면 유리로 파사드(전면)를 마감한 단순한 흰색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14일 개관한 강릉의 새로운 공공 미술관 '솔올미술관'이다.

솔올미술관은 미국의 유명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90)가 설립한 건축회사 마이어 파트너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관 전부터 주목받았다.

'백색 건축'으로 유명한 마이어는 1984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 등 세계 곳곳에서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다.

국내에서는 강릉 씨마크 호텔 설계로 알려진 그는 현재 은퇴해 이번 미술관 건축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19일 찾은 미술관에서는 흰색 콘크리트와 유리, 직선으로 대표되는 마이어의 건축 색깔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릉의 새 랜드마크' 솔올미술관…"한국미술과 세계미술 연결"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3천200여㎡ 규모로 미술관 자체는 그다지 크지 않다.

세 개 건물이 중앙 마당을 둘러싼 형태로, 전면을 유리로 마감해 전시장 2층에서는 강릉 시내 풍경이 마치 전시 작품을 보는 듯 펼쳐진다.

미술관 로비는 유리로 들어오는 따뜻한 빛으로 가득 찼다.

전시실은 전시 성격에 맞춰 채광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날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연덕호 마이어 파트너스 대표는 "회사의 중요한 철학인 자연광과의 관계성을 최대한 담아내려 했다"면서 "고요하면서도 건물 그 자체로 완벽한 조형인 동시에 (전시될) 예술 작품과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연 대표는 "모든 건축가의 꿈은 미술관을 짓는 것"이라면서 "솔올미술관은 그동안 지었던 세계의 미술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작고 친밀한 규모지만 강릉의 랜드마크가 될 건물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강릉의 새 랜드마크' 솔올미술관…"한국미술과 세계미술 연결"
'소장품 없는 미술관'을 표방하는 솔올미술관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해 우리 미술의 미술사적 맥락을 조명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김석모 솔올미술관장은 "수도권 밖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할 미술관이 있을 수 있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며 "품격 있고 정제된 전시 콘텐츠로 주요 미술사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이어 "미술관이 그저 관광 명소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라면서 "단순히 거장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한국미술을 세계미술의 맥락에서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술관은 이런 목표 아래 첫 전시로 '공간주의'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루치오 폰타나(1899∼1968)와 한국의 곽인식(1919∼1988)을 소개한다.

루치오 폰타나 재단 소장품으로 꾸며진 폰타나 전시는 국내 미술관에서는 처음 열리는 그의 개인전이다.

폰타나는 1947년 '예술은 영원하지만 불멸할 수 없다.

(중략). 예술은 행위(gesture)로서 영원하지만 물질적으로는 수명을 다할 것이다'는 내용의 '공간주의-제1차 공간주의 선언'을 발표한다.

폰타나는 이후 전통 회화의 평면성을 극복하기 위해 캔버스를 칼로 베거나 구멍을 뚫었고 돌과 비슷한 형태의 금속을 베거나 구멍을 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기법을 적용한 회화 작품과 조각 연작을 볼 수 있다.

'강릉의 새 랜드마크' 솔올미술관…"한국미술과 세계미술 연결"
폰타나는 기술과 과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4차원 세계를 표현하려 했다.

이런 그의 생각이 드러나는 작업이 '공간환경' 연작이다.

미술관 로비 천정에는 자유로운 제스처가 드러나는 곡선 구조의 흰색 네온 작업이 설치됐다.

1951년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 구조' 작품을 재현한 작업이다.

온통 흰색의 공간에 캔버스를 찢은 것처럼 벽에 그은 자국을 내거나 반대로 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에 빛나는 색색의 형광 작업 등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선을 보인다.

공간환경 연작은 설치 이후 원작이 보존되지 않는 특성상 이번 전시작은 모두 1940∼1960년대 당시 전시 공간과 네온 설치를 재현한 것들이다.

전시를 위해 방한한 루치오 폰타나 재단의 실비아 아르데마니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폰타나의 첫 한국어 도록도 출간된다"며 "새로운 관객이 폰타나에 다가가는 유효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3전시장에서는 곽인식의 개인전이 열린다.

193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한 곽인식은 폰타나의 공간주의를 비롯해 초현실주의, 앵포르멜(비정형 미술) 등 서구 미술의 주요 사조를 탐구했다.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폰타나와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고 미술을 물질에서 분리하려 했던 폰타나와는 달리 물질성을 탐구해 작업 세계는 정반대인 작가였지만 화면에 변형을 가하는 방법론에서는 폰타나의 작업 방법이 떠오르기도 한다.

폰타나가 평면성을 벗어나 시공간으로 작품을 확장하기 위해 캔버스를 찢었다면 곽인식은 물질성을 탐구하는 차원에서 철구슬로 유리판을 깨뜨리거나 동판을 찢고 봉합했다.

전시에는 유족이 소장한 회화와 조각 20점이 나왔다.

'강릉의 새 랜드마크' 솔올미술관…"한국미술과 세계미술 연결"
강릉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미술관의 향후 운영 방향은 불투명한 상태다.

미술관은 교동7공원 아파트 개발사가 강릉시 소유 부지에 건물을 지어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것으로, 2021년 11월부터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 위탁 운영 형태로 개관과 전시를 준비해 왔다.

두 번째 전시로 예정된 캐나다 태생의 미국 여성작가 아그네스 마틴의 전시가 끝나면 재단의 위탁 운영 계약기간이 끝난다.

그러나 강릉시는 아직 이후 운영 방안에 대해 별다른 계획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 때문에 김 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이후 강릉시가 솔올미술관을 어떻게 운영할지 전혀 모르며 향후 운영방안에 대한 협의도 없었다"면서 강릉시에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강릉의 새 랜드마크' 솔올미술관…"한국미술과 세계미술 연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