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늘 현실을 배신해 왔다. 이미지는 늘 인물을 (클로즈 업 기법과 같이) 더 아름답게 비추거나, 존재하는 공간을 환상화하는 것으로 관객을 현혹해 왔다. 혹은 이미지는 내레이션으로 전달되는 사실과 반대되는 상황을 보여주거나 결말을 지음으로서 영화 속의 이야기를 배반하기도 한다. 1944년 빌리 와일더의 '이중배상'이 그랬던 것처럼.

사카모토 준지의 신작, <오키쿠와 세계>의 이미지 역시 그러하다. 정말 더럽게 (문자 그대로) 가난한 두 청년과 그들이 마주하는 공동주택의 군상들은 오물과 악취가 가득한 곳에 존재하지만 이들의 일상은 한없이 아름답고 고상한 흑백 이미지로 전달된다. 이미지는 끊임 없이 지리멸렬한 현실을 배반하고, 관객들은 이러한 이미지의 폭동에 매료된다.
‘똥 푸는 청년들’이 주인공인데,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영화는 ‘세계’라는 단어도,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던 19세기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 (쿠로키 하루)는 복수의 결투에서 아버지를 잃고 본인 역시 처형된다. 그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목소리를 잃게 되고 세상과의 연을 끊어버린다. 한편 영화의 또 다른 중심 인물, ‘야스케’ (이케마츠 소스케)와 ‘츄지’ (칸 이치로)는 에도의 할렘과도 같은 하층민의 공동주택을 돌며 세입자들의 인분을 사고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청년들이다.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가 끊이지 않지만 이들은 굴복하지 않는다. 야스케는 언젠가 이야기꾼으로 무대에 설 꿈으로, 츄지는 오키쿠를 향한 마음을 전달할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똥 푸는 청년들’이 주인공인데,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미리 말하자면 <오키쿠와 세계>는 보기 쉽지 않은 영화다. 일단 첫장면부터 등장하는 ‘인분’은 영화 전반에서 끊임없이 (때로는 클로즈 업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세계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순환 경제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사카모토 준지는 ‘분뇨업자’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리고 음식과 분뇨의 순환과정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담고 싶었다는 것이다. 감독의 말을 대변하듯, 영화 속에서 야스케는 궁극적으로 먹는 것과 배설하는 것은 같은 행위이고 따라서 음식과 배설물은 같은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실로 과감하고도 철학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지만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똥 푸는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설정보다 그 소재를 철저히 배신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들이다.
‘똥 푸는 청년들’이 주인공인데,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똥 푸는 청년들’이 주인공인데,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흑백 이미지로 전달되는 자연과 인간의 공간들, 즉 작은 집들, 지붕, 강을 감싸고 있는 나무들과 그 너머의 논과 밭. <오키쿠와 세계> 속 인간의 공간은 처연하고 아름답다. 아마도 사카모토 준지가 그리고 싶었다는 ‘순환’은 음식과 분뇨를 통한 경제적 유기관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영적인 관계가 아닐까. 그리고 인간이 자연으로 회귀하기 전까지 서로를 채워주고 재움을 받는 ‘순환’의 과정말이다. 예컨대 오키쿠가 아버지와 목소리를 잃고 낙담했을 때 공동주택의 사람들은 그녀의 곁을 매일 찾아와 빈 공간을 ‘채워’준다. 누군가는 절인 정어리를, 누군가는 술 한 병을, 추지는 (오키쿠가 글을 쓸 수 있는) 종이를 들고 찾아와 그녀의 상실과 상처를 돌봐주는 것이다.
‘똥 푸는 청년들’이 주인공인데,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영화 속에서 ‘인분’ 만큼이나 중요한 레퍼런스는 ‘글’이다. 오키쿠는 사원에서 글을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목소리를 잃고 나서 수업을 중단해버린다. 어린 스님들과 읽고 쓸 줄 모르는 추지의 회유로 오키쿠는 다시금 붓을 든다. 영화 속에서 ‘글’은 오키쿠가 말을 할 수 없음에도 사람들과, 문명과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동시에 문맹이었던 추지가 오키쿠에게 글을 배우면서 비로소 그는 작은 에도를 넘어 ‘세계’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똥 푸는 청년들’이 주인공인데,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똥 푸는 청년들’이 주인공인데,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서장과 종장을 제외하고 영화는 총 7개의 짧은 챕터 (러닝타임: 90분) 로 구성된다.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제작비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이야기의 한 조각(?)씩 만들다보니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톤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느껴진다. 에도 곳곳의 인분을 줏어 모으면서도 서로에게 끊임 없이 농담을 던지고, 오키쿠가 추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상황에서도 악취를 참지 못하는 대목 등 영화는 소소하고 인간적인 에피소드로 챕터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서사와 이미지의 홍수시대에서, 재미와 쾌락의 과잉 세계에서 <오키쿠의 세계>는 분명 심오하고도 유머러스한, 영리하면서도 원초적인 영화적 ‘세계’를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