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발 '패딩 신발' 어떻게 2030 女心 훔쳤나
이랜드그룹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의 패션부문 매출이 5년 만에 3조원 수준을 회복했다. 한한령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중국에서도 8년 만에 매출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짧은 길이를 뜻하는 ‘크롭’ 패션 트렌드를 읽어낸 최운식 이랜드월드 대표(46·사진)의 ‘빅데이터 경영’이 성과를 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비장의 무기는 ‘짧은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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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이랜드월드는 지난해 패션부문에서 한국과 중국을 합해 매출 3조217억원을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이랜드월드는 스포츠 브랜드인 ‘뉴발란스’를 비롯해 ‘스파오’ ‘후아유’ ‘미쏘’ ‘로엠’ 등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랜드는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글로벌 시장에서 ‘K패션’ 선두 주자로 꼽혔다. 2015년 이랜드의 패션부문 매출은 4조7366억원에 달했다. 중국 법인 매출이 2조7972억원으로 전체의 60%에 육박했다.

그러나 중국 사업은 2016년 후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 등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또 2020년부터는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중국 패션 매출은 2022년 1조184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4조원을 넘나들던 전체 패션 매출도 2019년부터 2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절치부심하며 ‘반전’을 준비한 이랜드는 먼저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를 포착해 적절한 아이템을 내놓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최 대표는 10여 명의 데이터 전문가로 구성된 빅데이터팀을 꾸려 매 시즌 패션업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트렌드를 분석했다.

작년엔 짧은 길이감을 의미하는 크롭에 주목했다. 신발 목의 길이가 짧고 뒷부분이 신고 벗기 좋게 트여 있는 ‘뮬’ 제품이 대표적이다. 뉴발란스가 작년 9월 국내에 출시한 패딩 뮬 슈즈 ‘퍼플리 v2’는 4개월 만에 3만 족 이상 팔리며 매출이 2022년 대비 14배 급증했다. 실내에서 쉽게 신을 수 있고, 겉감이 패딩 소재여서 눈이 와도 생활방수가 가능하다는 장점에 소비자들이 주목했다.

○해외 고객 반응도 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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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리는 고객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탄생했다. 뉴발란스 마케팅팀은 빅데이터팀과 함께 고객 조사를 통해 25~35세 여성 고객이 겨울철 방한용 슬리퍼나 뮬 스타일 제품을 선호한다는 점을 파악했다. 이후 더현대서울 등 해당 고객층이 모이는 백화점 현장 방문, 국내외 패션 인플루언서 착장 조사를 통해 트렌드를 확인했다.

출시를 결정한 뒤엔 ‘키워드 선점’에 주력했다. 이랜드는 빅데이터팀이 파악한 트렌드를 토대로 국내외 공장에서 2일 만에 테스트 물량을 내놓고, 대량 생산도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그 결과 경쟁 브랜드보다 2주 먼저 패딩 뮬을 선보일 수 있었다.

퍼플리는 해외에선 정식 출시되지 않았지만 벌써 반응이 뜨겁다. 이랜드월드 관계자는 “서울 명동점, 홍대점 등에는 국내외 인플루언서가 착용한 화보를 들고 와 같은 상품을 달라고 하는 외국인 고객이 많다”며 “준비된 퍼플리가 금세 동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뉴발란스의 ‘액티브 숏 구스 다운’ 등 쇼트패딩 제품 역시 작년 매출이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이랜드의 슈즈 패스트패션(SPA) 브랜드인 슈펜은 짧은 길이감의 양털 샌들, 쇼트부츠 등 핵심 상품 누적 매출이 같은 기간 200% 늘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