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류업계에서는 ‘와인 전성기가 이미 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기간에 ‘홈술’ 트렌드로 와인 시장이 급팽창했다가 엔데믹 이후 성장세가 꺾였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가 무색한 곳이 있다. 작년 말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6층에 문을 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클럽 코라빈 위드 떼레노’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5대 샤토 와인’ 등을 판매하는데도 두 달 만에 2000명 이상이 방문했다.

비결은 코라빈. 코르크를 제거하지 않고 얇은 바늘을 꽂아 와인을 딱 한 잔 뽑아내는 기술이다. ‘최고급 와인을 보틀의 10분의 1 가격에 경험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난 이유다. 이곳은 와인 소매점 와인나라로 유명한 1세대 와인유통업체 아영FBC가 운영한다. 이 회사는 침체한 와인 시장에서 전문업체의 노하우를 접목한 신개념 F&B(식음료) 레스토랑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3년 새 레스토랑 일곱 곳 열어

‘클럽 코라빈 위드 떼레노’의 직원이 코라빈을 활용해 와인을 추출하고 있다.
‘클럽 코라빈 위드 떼레노’의 직원이 코라빈을 활용해 와인을 추출하고 있다.
22일 유통·주류업계에 따르면 아영FBC는 최근 3년 새 사브서울(신사동), 무드서울(세빛섬), 모와(명동), 클럽 코라빈 위드 떼레노(잠실) 등 서울에 레스토랑 일곱 곳을 잇달아 열었다. 이들 레스토랑에는 아영FBC가 37년간 와인을 수입하며 쌓은 노하우가 녹아 있다.

클럽 코라빈 위드 떼레노가 대표적이다. 와인을 글라스로 파는 곳은 많지만 ‘샤토 무통 로칠드’ 등 최고급 와인을 동일한 품질로 제공하는 곳은 드물다. 코라빈 기술을 개발한 미국 회사와 독점 계약해 국내에 들여온 덕분이다.

이 밖에 1600여 종의 와인으로 만든 터널(모와), 클림트 등 아트와인 전시장(사브서울), 한강에서 즐기는 와인(무드서울) 등 매장마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갖췄다. 반응은 뜨겁다. 사브서울과 무드서울의 월평균 방문객은 각각 1800명, 1700명에 달한다.

○와인시장 위축에도 실적 호조

업계에선 아영FBC의 30여 년 뚝심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영FBC는 1990년대 초반부터 강남 최초 와인바 레스토랑 ‘베라짜노’, 근대식 한옥과 와인을 접목한 ‘민가다헌’ 등을 잇달아 열었다. 당시만 해도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와인은 부자들만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코로나19를 거치면서다. 홈술 유행으로 와인 저변이 넓어졌다. 코로나19 이후엔 집에서 벗어나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와인을 즐기려는 수요가 급증했다. 아영FBC가 2020년 사브서울을 시작으로 다시 F&B 투자에 나선 배경이다. 사브서울이 ‘예약전쟁’을 치를 정도로 대박을 터뜨리자 2021년 세빛섬 운영사 효성도 알짜 매장 자리를 아영FBC에 선뜻 내줬다.

F&B 사업은 ‘실적 버팀목’이 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와인 수입량은 2021년 정점(7만6575t)을 찍고 감소하는 추세다. 2022년 수입량은 7만1020t이었다. 이 기간 아영FBC 매출은 1010억원에서 1242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영업이익도 475억원에서 581억원으로 증가했다. 아영FBC 관계자는 “호실적은 레스토랑 사업 덕분”이라며 “매장을 지속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