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를 사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차감' 때문이란 말이 있다. 한국의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기아가 지난해 세계에서 판매한 차량(730여만대) 기준으로 도요타와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3위에 오른 완성차회사로 올랐지만, 여전히 이 말은 유효하다. 이 때문에 메르세데스벤츠는 특유의 '삼각별' 마크를 점점 더 크게 만들고, BMW는 차키에 로고를 눈에 띄도록 만든다.

실제로 이 덕분에 한국에서 수입차의 선전은 눈부신다. 선진국에서도 최상위 프리미엄이라는 차들이 길거리에 자주 보이고, 포르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강남 산타페'라고 불린 지 오래다. 이런 문화는 IMF 위기가 있었던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0년 서울 여의도 BMW 전시장. 한경DB
2000년 서울 여의도 BMW 전시장. 한경DB
1998년 한국에서 팔린 수입차는 2075대로 2000여대에 불과했다. 당시엔 정말 '돈 좀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실제로 당시 팔린 수입차의 65%인 1339대는 서울 사람이 샀다. 2위인 부산에서 팔린 수입차는 194대에 그쳤을 정도니 사실상 서울에만 수입차를 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다른 광역자치단체에선 1년간 팔린 수입차가 두 자릿수에 그쳤다. 한 대도 안 팔린 곳(전남)도 있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조선업 등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분 중국 특수 바람 덕에 고도 성장을 다시 시작한 2000년 초기부터 수입차는 전국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수입차 판매는 1만대를 돌파해 1만6119대가 팔렸다. 2004년엔 서울에서 판매된 수입차만 1만여대를 넘은 1만368대에 달했다.
"하차감 좋아요"…수입차 인기 폭발한 곳은 서울 아닌 '이곳'
다만 서울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4%로 절반 아래로 처음으로 낮아졌다. 대신 신도시가 정착하기 시작한 경기도에서 그해 전국에서 판매된 수입차(2만3345대)의 33%가 팔리며 서울과의 격차를 본격적으로 좁혔다. 이때만 해도 수입차 열풍은 서울 수도권에 국한됐고,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지방의 대도시들은 전체 판매의 2% 남짓의 비중에 그쳤다. 2004년은 수입차 연간 판매량이 처음으로 2만대를 넘긴 해이기도 하다.

그 때부터 수입차 열풍은 본격적으로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수입차가 처음으로 10만대 판매를 넘어선 2011년 전국에서 수입차를 가장 많이 산 곳은 경남이었다. 그해 경남에서 팔린 수입차는 3만4005대로 서울(2만2026대)나 경기(1만8441대)를 훌쩍 넘어섰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당시 조선업과 중공업 경기가 좋아 조선소와 공장들이 몰려 있었고, 공채 매입 등 차량 등록비용이 경남이 싸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경남에서 수입차 판매가 늘었다"고 회상했다. 한해 수입차 판매가 20만대 돌파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4년 뒤인 2015년 전국에서 팔린 수입차는 24만3900대에 달했다.
"하차감 좋아요"…수입차 인기 폭발한 곳은 서울 아닌 '이곳'
다만 2016년부터는 수입차 판매 성장이 멈추는 분위기다. 2015년 전국에서 24만3900대가 판매된 수입차는 이듬해에 23만3088대로 수입차 판매를 집계하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줄었고, 이후 증감을 거듭하고 있다. 가장 많은 수입차가 팔린 해는 2022년(28만3435대)였지만, 지난해엔 27만1034대로 다시 줄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국산차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고, 남에게 보여주기식의 수입차 구입하는 현상이 잦아들기도 했다"며 "주요 수입차들이 연비를 속이다가 들통이 났고, 주행 중 화재가 나는 등 일련의 대형 사건들도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불기 시작한 수입차 바람이 4반세기가 지나면서 오히려 서울에서 주춤하고 있다. 지난해 수입차를 가장 많이 산 곳은 경기도(5만8320대)였고, 인천(4만4719대)이 뒤를 이었다. 서울에서 팔린 수입차는 4만1865대로 부산(3만5235대)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인천과 부산이 사실상 수입차를 더 많이 사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