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금까지 사법농단 의혹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법관 세 명 중 가장 무거운 형량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부장판사 김현순 조승우 방윤섭)는 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30여 개 혐의를 받는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에 넘겨진 지 5년2개월 만에 나온 첫 판결이다.

재판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처분 소송에서 고용노동부의 소송서류를 대필한 혐의 △홍일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형사재판 전략을 대신 세워준 혐의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원을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혐의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3억5000만원)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과 청와대를 지원하는 데 이용했다”며 “사법부 독립이라는 이념은 유명무실하게 됐고,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해됐다”고 지적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해 일본 기업 입장에서 재판 방향을 검토하고 외교부 의견서를 미리 건네받아 감수해 준 혐의는 무죄로 봤다. 사법부의 대행정부 업무로써 필요한 일을 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특정 법관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에 가담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거나, 일부 해당한다 해도 행정처 심의관 등에게 의무가 아닌 일을 시켰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지난달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인물들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가운데 유죄 사례가 나오면서 이 사건을 둘러싼 법정 공방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이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 14명 중 일부라도 유죄가 인정된 사람은 세 명이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2심에서 벌금 1500만원,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상고심을 진행하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