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주52시간이 좁힌 韓·中 반도체 격차
알리바바그룹의 창업자 마윈은 ‘996 직장 문화’(주 6일·오전 9시~오후 9시 근무)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중국 노동법은 법정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 주당 44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초과 근무 시간은 하루 최대 3시간, 월 36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알리바바, 텐센트 등 대형 기술 기업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법 규정을 무시했고, 당국도 별다른 단속에 나서지 않으면서 ‘996’으로 불리는 노동 관행이 굳어져 왔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부의 용인 아래 이뤄진 긴 노동시간은 후발 주자였던 중국 기술 기업들이 급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밤낮 잊은 中 R&D

금융가로 대표되는 중국의 고소득 직종도 법정 노동시간이 사실상 무의미하다. 1년 전 한국을 방문한 중국 투자은행(IB)업계 거물은 모든 산업 분야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한국의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해 의아해했다. 그는 성과에 따라 높은 보상을 받는 IB 분야에서 노동시간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참고로 자신의 회사는 밤 12시를 넘긴 시간에 사무실 불이 꺼진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는 연구개발(R&D) 분야에서도 노동시간 준수 여부를 단속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모든 자원과 재원을 반도체 등 첨단분야에서의 기술 격차 해소에 쏟아붓고 있어서다. 이 문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중국이 첨단분야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면서 R&D 부문은 밤낮을 잊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주 52시간제 시행 후 민간기업 연구소와 개발 부서는 밤만 되면 ‘불 꺼진 사무실’로 변해버렸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내부 분석 결과 노동시간 차이가 R&D 속도의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며 “한국은 노동시간 제약 탓에 과거에 비해 기술 상용화에 걸리는 속도가 물리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불 꺼진 韓 연구실

주 52시간 근로제는 블루칼라(생산직) 근로자에게 적합한 제도다. 그런데 성과 중심인 화이트칼라(사무직) 근로자까지 획일적으로 노동시간 개념을 적용하다 보니 각종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은 고소득 전문직의 근로시간을 제한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면제(white collar exemption)’ 제도를 두는 등 주요 선진국은 대부분 제도에 탄력성을 부여해 놨다. 획일적 규제의 폐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한국은 경직적 주 52시간 근로제를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R&D 분야에서 이뤄지는 기술 혁신 속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 부가가치 축소는 결국 사회 전체의 복리후생 감소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세계 1위 삼성전자가 유지해 온 반도체 분야에서의 중국과의 기술 ‘초격차’도 비탄력적 주 52시간 근로제 탓에 그 간극이 한 걸음씩 좁혀지고 있다. 노동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국가 핵심 경쟁력에 피해를 주지 않게 제도를 세밀하게 다듬을 방법은 많다. 여야가 정쟁에 함몰돼 직무유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뒷감당을 누가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