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새 자금조달 통로로 떠오른 해외 교환사채(EB) 발행이 올 들어 전면 중단됐다. 지난해 공매도 전면 금지 정책이 시행되면서 해외 투자자 모집이 막힌 결과다.

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IB들은 한국에서 공매도가 금지된 지난해 11월 5일 이후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외화 EB 발행 주관 등의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해외 투자자 수요가 급감해 기업들이 발행을 접었기 때문이다. EB는 발행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나 자회사·투자회사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채권처럼 안정적인 데다 주식처럼 차익을 얻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저금리에 자금조달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통했다.

해외 EB 발행이 막힌 것은 공매도 금지 여파로 풀이된다. 한국 기업의 EB를 담는 투자자 중 80~90%는 해외 롱쇼트펀드다.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사는 동시에 주가가 내릴 종목을 공매도하면서 수익을 내는 펀드다. 하지만 한국 주식의 공매도가 금지되면서 이들 해외 롱쇼트펀드의 한국 EB 수요도 끊겼다.

IB 관계자들은 “정책 변화로 효율적 자금조달 수단인 해외 EB 발행 통로가 막혔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기업들은 EB 발행으로 조달금리를 연 2~3%포인트 낮추는 효과를 거뒀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월 자사주 지분 2.8%를 기초자산으로 EB 17억달러(약 2조20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금리는 연 1.25~1.75% 수준에서 형성됐다. SK하이닉스는 같은 해 2월 회사채 1조3900억원어치를 연 3.8~4.9%에 발행한 바 있다. 조달금리를 3%포인트가량 낮춘 것이다.

EB 시장이 안착하면서 기업들의 발행 행렬이 이어졌다. 작년 하반기엔 포스코그룹 계열사 한 곳과 국내 대형 게임업체 등이 해외 EB 시장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공매도 금지로 조달 계획을 접어야 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CJ ENM, 넷마블 등도 잠재 발행 후보로 꼽혔지만 발행할 길이 막혔다. ‘조(兆) 단위’ 투자금을 낮은 금리에 확보하고 조달처를 다변화하려던 기업들의 재무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IB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공매도 금지가 한국 총선 전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면서도 “투자자 사이에서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