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로고.  /사진=로이터
TSMC 로고. /사진=로이터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주력 제품인 HBM3(4세대 고대역폭메모리), DDR5(더블데이트레이트5) 등 최첨단 D램 경쟁에서 최근 SK하이닉스에 밀린 것으로 평가된다. 30년 연속 메모리반도체 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기로에 선 삼성전자 반도체' 시리즈 4회에선 경쟁력 회복을 위한 제언을 전한다.

1등 주의에 갇힌 삼성전자

"삼성이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는 조직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계, 업계 등에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 회복 방안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다. '30년 메모리반도체 1위' 자리를 경쟁사에 내주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1등 주의' 슬로건이 조직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1위를 지켜야 하는 메모리 사업에선 전략을 지나치게 수세적으로 만들고, 추격해야 하는 파운드리 같은 사업에선 무리수를 두게 한다는 분석이다. '내실', '중장기 기술 투자' 같은 단어가 삼성엔 꼭 필요한 것으로 꼽혔다.

1등 삼성의 압박감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사업으론 파운드리가 꼽힌다. 삼성전자는 2017년 파운드리를 독립사업부로 분리하고 2019년 사업을 본격화했다. 삼성 입장에선 업력 7년의 '신사업'인 셈이다. 하지만 처음 내건 목표가 너무 거창했다.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 세계 최강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진 TSMC를 11년 만에 제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지만 삼성전자는 TSMC를 타도 대상으로 선정했다. 경쟁 분야를 10nm 미만 최첨단공정으로 좁혔다. 삼성전자는 2018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적용한 7nm 공정을 처음 시작했고 5nm, 4nm 공정 진입도 TSMC에 늦지 않았다. 3nm 공정에선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라고 불리는 신기술을 적용했다. 겉으로 보기엔 TSMC와 대등한 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파운드리 2등 지키면 TSMC 잡을 기회 온다"

문제는 '세계 최초'에 집착하다 보니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수율이다. 수율은 전체 생산품 중 양품의 비율로 기술력과 수익성의 척도로 불린다.

약 1년~1년 6개월 전 삼성전자의 최신 파운드리 공정인 4nm의 수율은 '25% 미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00개를 만들어도 75개 이상을 버렸다는 의미다. 원하는 만큼 칩을 못 얻게 된 고객사들은 납품에 문제가 생겼다. 낮은 수율은 고객 이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삼성 4nm 공정을 이용했던 퀄컴 등 고객사는 TSMC로 옮겨갔다. 퀄컴은 현재 최첨단 칩은 삼성 경쟁사인 TSMC에 맡기고 나머지 일부 물량을 삼성 파운드리에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후발주자인 삼성전자 입장에선 '안정적으로 2등 자리'만 지켜도 성공적"이라며 "실력을 쌓고 내실을 다지다가 TSMC가 크게 실수할 때 치고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수주형 산업으로 변하는 D램 "삼성도 바뀌어야"

메모리반도체에선 '1등 주의'가 방어적인 전략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양산', 즉 '생산능력'을 중시하는 문화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확보한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점유율로 승부를 겨루면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부터 이슈가 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관련해서도 삼성전자 내부에선 "초기엔 밀렸지만, HBM 기술력을 따라잡고 생산 능력을 키워놓으면 2~3년 뒤에는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최근 분위기는 약간 다르다. HBM 시장이 '고객 맞춤형', '수주형' 사업 구조로 돌아가고 있어서다. 기술력을 앞세워 고객을 선점한 기업이 차세대, 차차세대 제품에서도 계속 주문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이다. 엔비디아가 고객사를 다변화하고 있는 와중에도 SK하이닉스가 가장 많은 HBM 물량을 납품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반도체 전문 학계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큰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아직 과거의 성공방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며 "지키기 위해 방어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1위 기업의 딜레마가 삼성전자에서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해법은 결국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신기술'에 투자하고 우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꼽힌다. 시간은 걸리더라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없는 기술' 개발에 중장기 투자 필요

이런 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기술 경영'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 회장은 최근 여러 차례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말하며 '세상에 없던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미·중 반도체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삼성전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사가 안 가진 기술'을 통해 지금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경계현 사장이 2022년 삼성전자 DS부문장에 취임한 이후 최근 5~10년간의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도 '희망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경 사장은 최근 중장기적인 관점의 기술 개발과 내실화를 주문하고 있다. 10년 뒤 삼성 반도체를 먹여 살릴 조직 등을 신설하고 반도체 R&D 단지 투자를 끌어낸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경계현 사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다시 해보자"

파운드리와 관련해서도 '기본'을 강조하고 있다. 이 결과 현재 삼성 4nm 공정 수율은 약 60%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화된 수율을 바탕으로 시스템LSI사업부의 '엑시노스2400'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같은 내부 고객의 최첨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외부 고객이 다시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경 사장은 최근 직원들과의 타운홀미팅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다시 해보자"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우수 인력 육성 문제 역시 중장기 중점 과제로 평가된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는 "급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고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대학에 대한 투자를 통해 우수 인적자원을 확보하고 R&D 투자를 늘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