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 확대 유예 법안 처리가 끝내 좌초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어제 의원총회 뒤 “중대재해법은 그대로 시행하는 걸로 결론 내렸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5∼49명인 사업장까지 확대한 중대재해법 시행을 2년 더 유예하고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을 2년 뒤 개청하는 내용의 협상안을 제의했으나 거부한 것이다. 산안청 설치는 민주당이 유예 전제 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비록 여당이 ‘2년 뒤 개청’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에 대한 혼란과 불안감 호소를 떠올려보면 충분히 절충 가능한 제안이었다. 유예가 물건너 가면서 결국 83만여 곳에 이르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사업장이 큰 차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은 “산업현장에서의 노동자 생명 안전을 더 우선한다는 기본 가치에 충실하기로 했다”고 했지만, 상식적으로나 정치 도의상으로나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애초에 산안청 설치 요구부터 무리한 것이었다. 3년 전 문재인 정부는 중대재해법 시행에 대비해 고용노동부 산하에 산업안전보건본부를 만들었고, 이 조직이 큰 탈 없이 산업안전과 보건정책을 총괄해오고 있는 마당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2021년 산안청을 설립하기로 하고 관련 법안도 발의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처벌 위주라는 지적과 함께 근로감독 권한을 두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이견으로 무산되자 산업안전보건본부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민주당 집권 시절엔 관철하지 못해놓고 정권이 바뀐 뒤 돌연 산안청 설치를 중대재해법 유예 협상 카드로 들이민 것은 비겁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이 처음부터 유예 법안을 처리해줄 마음이 없었으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만 끈 것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 표심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노동계의 눈치는 중요하고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온갖 어려움과 혼란을 겪을 수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처지는 외면하면서 민생정당이라고 외칠 자격이 있나. 법 자체도 ‘걸면 걸리는’ 식의 문제투성이인 터에 안전 보건 대응력이 취약한 영세업체가 이 법을 적용받으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고, 근로자들은 실직 위기에 몰릴 수 있다. 그 후폭풍에 대한 책임은 모두 민주당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