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세계에 대한 오해…신간 '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
이슬람교를 창시한 선지자 무함마드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매장하지 못했다.

다시 살아 돌아올 것이라 예견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가 생존했을 때 코란에 나온 '심판의 날'이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러 이유로 대부분이 그의 죽음을 믿지 못했다.

죽은 지 2~3일 후 시신에서 부패의 징후가 포착된 뒤에야 사람들은 서둘러 매장했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고 떠났기에 저마다 칼리프(신정일치 지도자) 자리를 노렸다.

무함마드의 피를 이어받는 이들도, 한때 무함마드의 정적이었던 가문도, '왕좌의 게임'에 동참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칼리프의 정통성 여부를 놓고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규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계에 대한 오해…신간 '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
프랑스 낭트대 역사학과 교수인 존 톨란이 쓴 '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미래의창)는 1천400년에 이르는 이슬람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시중에 떠도는 이슬람교에 대한 여러 오해를 바로잡고,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문화권에서 각기 발전해 나간 이슬람 문명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한다.

책에 따르면 이슬람은 현대 미디어에 비치는 것처럼 폭력적인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은 노예해방을 지향했고, 여성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악습을 단절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으며 가난한 자들과 여행자, 포로들을 위해서 세금을 걷고, 기금을 조성했다.

다른 언어와 인종, 종교의 다양성을 보장할 만큼 관용적이기도 했다.

학문과 예술을 장려했으며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계승·발전시켜 유럽 르네상스의 초석을 놓았다.

이슬람 세계에 대한 오해…신간 '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
이런 평등과 다양성, 관용성, 학문적 성취 등을 무기 삼아 이슬람 제국은 성지 메카를 중심으로 동서로 뻗어나갔다.

이에 따라 무슬림들이 여러 대륙에 걸쳐 분포하면서 각 지역의 독특한 지방색이 이슬람교에 스며들었다.

이슬람 문명은 다채로워졌다.

엄격한 금욕주의를 강조한 곳도 있었지만, 포도주 마시는 걸 허용하고, 남녀 간 친밀한 관계를 용인하는 곳도 생겼다.

성인의 영묘에 참배하는 걸 허락하는 곳도 있었지만, 이를 우상숭배라 배격하는 곳도 있었다.

저자는 단일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슬람의 다양한 면면들이 이슬람을 이해하는 어려움 중 하나라면서 "이슬람의 역사는 이슬람을 향한 우리의 편향된 시각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고 말한다.

박효은 옮김. 39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