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뮤직클래시컬과 협업해 첫 플레이리스트…"역사적인 피아니스트로 구성"
"'이제까지 뭐했나'생각에 서른살 조금 두렵기도…체력부터 길러야죠"
조성진 "클래식 스트리밍 자연스러운 트렌드…짧은 곡으로 입문"
"저는 중학생일 때부터 CD를 많이 들었지만, 그때부터 스트리밍이 (클래식 음악 감상의) 중요한 플랫폼이 될 거라는 예상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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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클래식 전용 애플리케이션 '애플뮤직클래시컬' 협업 아티스트인 피아니스트 조성진(30)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는 조성진이 연주 일정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방문 중이던 지난 8일 화상 회의 플랫폼으로 이뤄졌다.

조성진의 집에는 중·고등학교 때 산 수천장의 CD가 집에 있다.

그는 음악은 주로 이 CD로 들으며, 가끔 음반 가게에 갈 때면 힐링 되는 기분을 느끼는 '아날로그' 음악가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클래식 음악 감상 방식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클래식 관객층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조성진은 "저는 아직도 CD로 음악을 듣지만, 제 주변만 해도 CD를 듣는 사람이 사실 별로 없다"며 "저도 투어 중에는 스트리밍을 이용하는데 음악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클래식 음악은 같은 곡을 여러 사람이 연주하고 녹음하다 보니 음반 가게에 가서 내가 몰랐던 리코딩을 확인하던 시대도 있었다"며 "지금은 클릭 몇번에 수십 개의 음반을 몇 초 만에 검색하고 찾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스트리밍으로 트렌드가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CD가 처음 나왔을 때는 LP의 감성을 못 담는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CD가 예전의 LP와 같은 위치가 됐잖아요.

클래식 팬들은 대중음악 팬들보다 보수적인 성향이 있지만, 언젠가는 스트리밍이 가장 대중적인 틀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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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클래식 스트리밍 자연스러운 트렌드…짧은 곡으로 입문"
무엇보다 조성진은 애플뮤직클래시컬이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에 더 쉽게 접할 통로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협업 아티스트로서 직접 만든 플레이리스트에 공을 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피아노 아카이브'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조성진의 플레이리스트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에밀 길렐스, 이그나츠 프리드만 등 20세기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마르셀 마이어, 이반 모라베츠 등의 연주도 포함됐다.

조성진은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같은 다양한 장르도 생각했지만, 결국은 제가 가장 잘 아는 피아노 음악들로 구성했다"며 "역사적인 피아니스트들이고, 저에게 영감을 준 연주들"이라고 설명했다.

플레이리스트는 총 38개 트랙으로 무려 3시간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조성진은 "더 담지 못해 아쉽다"며 욕심을 내보이기도 했다.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연주한 쇼팽의 마주르카, 라두 루프가 연주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3번과 14번, 에밀 길렐스가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번 등 작곡가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피아니스트들과 작품이 주로 눈에 띈다.

의외의 선곡도 있다.

'베토벤의 대가'로 꼽히는 빌헬름 캠프의 연주로는 리스트의 '두 개의 전설' 음반을 택했다.

조성진은 "호로비츠의 마주르카 연주는 (1965년) 카네기홀 복귀 무대 실황 음반"이라며 "몇 년 동안 쉬었다가 연주했을 때 녹음한 음반으로, 중학교 때부터 좋아한 훌륭한 음반"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빌헬름 캠프는 대중에게는 베토벤으로 더 유명하긴 하지만, 우연히 그의 쇼팽과 리스트의 연주를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며 "아직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리스트의 곡으로) 특별히 골랐다"고 설명했다.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곡은 모두 조성진이 CD로도 가지고 있는 음반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마리아 그린버그의 쇼팽 발라드 4번은 오랫동안 듣지 못했다가 이번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서 10여 년 만에 듣는다고 조성진은 전했다.

조성진은 "중학생 때 러시아 음반 가게에 같이 갔던 분이 훌륭한 피아니스트라고 말해 줘 발견하게 된 음반"이라며 "클라이맥스의 루바토와 클로징 부분이 마음에 들어 선곡했다"고 말했다.

조성진 "클래식 스트리밍 자연스러운 트렌드…짧은 곡으로 입문"
음반 하나하나의 특징을 꿰고 있는 조성진이지만, 플레이리스트를 만든 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다.

평상시 어떤 기준으로 음악을 듣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공부하려고 작곡가나 작품을 찾아 듣거나, 어떤 사람의 연주를 듣고 와서 다른 음원을 찾아볼 때가 있다"며 "자고 일어나서 꿈속에서 들었던 음악을 듣거나 머릿속에서 어떤 멜로디가 떠올라 그 음악을 듣기도 한다"고 답했다.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즐기려면 전곡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조성진의 평소 생각이다.

하지만 이번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때는 곡의 일부만 넣을지, 전체를 넣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베토벤의 소나타 13번은 1·2·3악장을 모두 넣었지만,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4번은 2악장,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1악장만 넣는 등 곡에 따라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어려운 이유는 길이가 길고, 제목이 어려워서인 것 같다"며 "입문할 때는 4∼5분 길이의 대중적이고 유명한 곡들로 시작할 수 있겠지만,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즐기려면 악장 하나보다는 전곡을 들어보려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 플레이리스트가 연주자나 곡에 대해 찾아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조성진 "클래식 스트리밍 자연스러운 트렌드…짧은 곡으로 입문"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세계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활동해 온 조성진은 올해로 서른살이 됐다.

경험이 쌓인 만큼 더 많이 걸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느끼는 듯했다.

조성진은 "서른살이 되는 게 조금 두렵기도 했다"며 " 서른 살 때 대단한 연주를 하고, 곡을 쓴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아서 '아 이제까지 뭐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더 잘해야 할 것 같은데 몇 달 만에 극적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올해 음악 이외의 목표로 하기 싫어한다는 운동을 꼽았다.

그는 "아직은 못 느끼긴 하지만 30대가 되면 체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해서 유산소 운동이라도 하려고 한다"며 머쓱한 듯 웃었다.

피아니스트로서 목표는 1시간 분량의 새로운 리사이틀 프로그램, 새 협주곡 2개를 익히는 것이라고 했다.

"매년 세우는 목표인데 올해도 지키려고요.

모든 연주가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는 것. 이런 게 제 삶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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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