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우 메리츠증권 도곡금융센터 부장이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일반 펀드매니저 당시엔 수익률이, 헤지펀드매니저 시절엔 투자자 접점이 적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며 PB로 변신한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신민경 기자
임성우 메리츠증권 도곡금융센터 부장이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일반 펀드매니저 당시엔 수익률이, 헤지펀드매니저 시절엔 투자자 접점이 적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며 PB로 변신한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신민경 기자
"굴리는 돈에서 0이 두 개나 빠졌는데도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책임 운용역이면서도 '내가 굴린다'며 고객 앞에 나서지 못 하는 게 늘 아쉬웠는데 17년 만에 갈증을 풀었네요."

금융투자업계에서 증권맨들에게 꿈의 직업을 꼼으라면 '펀드매니저'가 꼭 들어간다. 수백억원은 기본에 수천억원을 굴리는 펀드매니저는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업계를 대표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펀드매니저는 업계에서 증권사에 수수료 수익을 발생시켜주면서 주식을 사는 쪽이다보니 '갑'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갑'을 16년 하다가 자청해서 지점 프라이빗뱅커(PB)로 옮긴 이가 있다. 메리츠증권 도곡금융센터 입사 두 달차의 임성우 부장이다. 그는 고액자산가 전유물 격인 헤지펀드에서 활약한 베테랑 운용역이지만 PB로서는 이제 막 초보딱지를 뗀 신입이다. 헤지펀드 시절 홀로 1200억원을 굴리던 그가 지금 관리하는 고객 자금은 약 10억원. 그럼에도 임 부장은 개인 투자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잘 나가는 헤지펀드 매니저에서 PB로…왜?

임 부장은 2007년 라온투자자문에 입사하며 여의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후 금융위기로 증시 최저점을 맞은 2009년 2월 여의도투자자문(옛 AK투자자문)으로 적을 옮겨 4년간 다녔다. 당시 주식시장의 빠른 반등 속에서 랩 운용을 맡게 된 임 부장은 중국의 4조위안 부양정책을 고려해 이른바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부문에 집중 투자했는데, 그 결과 수탁고를 7000억원(기관 자금 포함)까지 끌어올렸다. 입사 당시 수탁고가 5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증가율이 1300%에 달했다.

이후 흥국자산운용에서의 5년여 근무를 마지막으로 임 부장은 '절대수익'을 내야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로 전향했다. 마이너스를 냈는데도 시장보다 덜 빠졌다면 "선방했다"고 보는 여의도 공식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무조건 손실이 나지 않길 바라는 투자자들과 목표의식에서부터 괴리가 나타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임성우 메리츠증권 도곡금융센터 부장이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제도권 금융사에서 쌓은 운용 자신감을 바탕으로 개인 고객들과의 접점을 늘려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사진=신민경 기자
임성우 메리츠증권 도곡금융센터 부장이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제도권 금융사에서 쌓은 운용 자신감을 바탕으로 개인 고객들과의 접점을 늘려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사진=신민경 기자
그렇게 씨앗자산운용과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약 5년간 헤지펀드를 도맡았다. 하지만 헤지펀드 운용도 투자자들과의 거리를 좁히려던 임 부장의 생각과는 꼭 들어맞지 않았다. 헤지펀드는 최소 가입금액 기준이 높아서 웬만한 개인들은 투자할 엄두도 못 냈기 때문이다. 그는 "헤지펀드도 결국 하나의 운용사이므로 여러 규제나 틀 속에서 고객 수익 극대화의 기회들을 놓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일반 펀드매니저 시절에는 수익률이, 헤지펀드매니저 시절에는 부족한 투자자 접점이 아쉬웠다. 고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법은 없는 걸까. 고민 끝에 임 부장이 찾은 답은 '지점'이었다.

"처음에는 무대 뒤에서 고객 돈을 굴리다가, 헤지펀드로 넘어가선 고액 자산가들을 만났고 올해 들어선 개인 투자자들을 두루 만나게 된 건데요. 돌이켜보면 점점 고객들에게 가까워지고자 했던 것 같아요. 투자자들과 접점을 늘려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임 부장은 운용에서 영업으로 확 바뀐 직무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초심자로 돌아가 고객 유치부터 배우고 있다. 그는 "이 지점에는 센터장과 저를 비롯해 총 6명이 펀드매니저 출신 PB"이라며 "본사 차원에서 '랩 활성화'를 목표로 각 지점 운용역량 제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곡동 부자들도 테마주 고점에 물려…"단기대박 욕심 금물"

강남구 도곡동은 '타워팰리스'로 대표되는 부촌이다. 때문에 PB들도 에이스 중의 에이스만 모여있지만 이들에게 맡겨지는 돈의 단위도 대체로 1인당 수십억원 수준이다.

임 부장은 자신을 찾는 고객들에서 가장 놀랐던 지점은 '적극성'이었다. "알아서 잘 해달라"는 방치성 고객들은 거의 없었다. 많은 고객들이 주가 변동이 있을 때마다 전화해 어떻게 대응할지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했다. 빠지고 있는데 손절해야 하나, 더 사야하나 혹은 이렇게 오를 땐 지금이라도 올라타는 게 좋은가 등의 질문이었다.
임성우 메리츠증권 도곡금융센터 부장이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단기 대박 욕심보다는 세상 변화를 주도하는 산업과 기업에 동참하는 마음가짐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신민경 기자
임성우 메리츠증권 도곡금융센터 부장이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단기 대박 욕심보다는 세상 변화를 주도하는 산업과 기업에 동참하는 마음가짐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신민경 기자
"이제는 유튜브와 텔레그램 등 투자 정보 채널이 워낙 다각화돼 있기 때문에 전문가와 개인들 간 정보의 질과 양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때문에 고액자산가들 사이에서도 투자 수익률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어요. 알파 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식 운용'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핫한 테마와 산업을 민감하게 따라가는 특성도 보였다. 그렇다보니 테마로 급등했을 때 고점에 사서 크게 물린 고객들이 많았다. 고액자산가에게도 고점과 저점을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임 부장은 "손해가 크게 난 종목들을 보면 대체로 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테마주였다"며 "투자판단이 늘 맞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잘못 투자를 한 경우 빨리 손절을 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 손실률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부장은 상반기 증시를 좋게 보고 있다. 외국인과 기관이 중국 경기의 부진을 한국에도 대입해서 '팔자'를 지속했지만, 이내 강한 미국 경기의 영향이 이를 끊어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중국 경제가 안 좋으면 한국도 안 좋다'는 말은 옛말에 불과하다. 지금이 주식을 늘릴 적기라고 본다"며 "다만 현재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대한 전망이 부정적인 만큼 국내 증시 내 2차전지 영향력이 커서 향후 업황이 지수 흐름에 방해될 수도 있다는 점은 과제"라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 그는 기사에 꼭 담아달라며 말을 남겼다. "자산가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의 크기를 떠나서 손실을 보면 마음 아프고 수익이 나면 기분 좋은 거죠. 물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주 목적이겠지만 단기 대박 욕심보다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주도하는 산업과 기업에 나도 동참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투자하길 권합니다. 과한 욕심을 버리고 여유를 갖고 있어야만 투자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