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의 기쁨과 고통을 안다. 아버지는 지독한 수집광이셨다. 요즘이야 멋있는 말로 콜렉터라고도 하지만, 무언가를 모은다는 건 그것에 미친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평상적 균형감은 깨져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수집광들은 맑은 눈의 광인처럼 해맑고, 순수하게 집착하며, 거침없이 그러모은다.

능력껏만 하면 좋은데 보통 시야가 넓고 깊어질수록 더 많이 보이므로 욕심도 많아진다. 그때부터 괴로워진다. 더 가질 수 없음에, 더 향유하고 더 소유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해서든 갖고 싶은 마음이 들면 악착같이, 그 전 소장품을 팔아서라도, 모셔온다. 이렇게 귀한 것을, 어렵사리 구한 작품을, 가족들은 시큰둥해한다. 또야? 하는 표정이다.

수집이란 무엇인가. 본인에게는 보물이어도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기꺼이 이해받지 못하는 게 수집같다. 심지어 너무 좋아하면 고통스러워지기도 한다. 수집이란 우연한 어떤 계기에 물성과 쾌락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개천절 맞아 줄서서 사던, 한귀퉁이 티끌만큼의 오점도 없는 전지 우표가 내 손에 들어올 때의 쾌감. 그 손맛과 눈맛이 수집광을 키운다. 너는 특별하단다 개성과 취향을 증거하는 수집, 누가 누가 더하나 사랑과 집착을 실험하는 수집에 나는 지레 질렸다. 지독한 예술 애호가 아버지의 수집 덕에 그 기쁨과 고통을 속속들이 경험했기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구본창의 항해'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 작가로서 기나긴 생의 항해를 보여주는 전시인데, 작가의 수집품과 아카이브도 볼 수 있다. 미대 시절 그렸던 명화 따라 그리기와 작가의 수집품들. 전시를 천천히 훑어보며 가만히 미소가 나왔다. 돌들을 수집해놓은 유리 진열장을 보고는 빵 터졌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남도의 해변가에서 주워온 몽돌을 평생 간직하셨는데, 돌의 무늬가 어여쁘다며 융으로 닦곤 하셨다. 맨질맨질하고 검은 무늬가 독특한 그 돌들은 지금 우리집 거실의 화분을 장식하고 있다.
수집에 한계가 있을까, 자신의 시선과 사유를 있는 힘껏 수집한 작가
구본창 작가의 사진 작품들을 돌아보며, 이 또한 생의 방대한 수집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찰나에 대한 경외, 흩어지는 순간에 대한 절박, 소멸하는 삶에 대한 기록으로의 수집. 그래서 모든 사진들에는 뜨겁고 고요한 시선이 담겨 있다. 대상은 시기에 따라 달라지고 있었지만, 작가가 품었을 마음은 한결같다. 그 순간에 대한 진심과 헌사. 소중한 생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기록해두는 것이므로 작가는 아마도 전력을 다해 스스로의 시선과 사유를 수집해온 것이다.

'시간의 손'과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 시리즈 앞에서 나는 그만 뭉클해져 동행 몰래 눈물을 훔쳤다. 평생 삶의 순간들을 수집해 온 작가의 회고. 진정한 회고에 이르러 빈 손을 보여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세상의 단아한 것들, 화려한 것들, 의미화하려 애쓴 것들 모두 궁극의 空, 텅빔에 대한 기록에 다름 아니라고 쓸쓸하게 미소짓는 것만 같아서.

한지 위에 태운 인화지,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들은, 재가 된 시간을 보여준다.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을 모으고 모으던 눈이 이제 재로 남을 생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것이 아니겠냐고 가만히 말해주는 것이다. 잠시 아득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토록 예술에 집착하다가 어느 날 불현듯 떠나신 아버지. 지독한 수집광은 생에는 미련이 없다는 듯 오래 앓지도 않으셨다. 삶을 후회없이 태우고 재가 되어 떠났다.
수집에 한계가 있을까, 자신의 시선과 사유를 있는 힘껏 수집한 작가
어른이 되고도 곧잘 헤맨다. 잘 사는 방법도 알고, 좋은 삶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데, 왜 이리 마음엔 바람이 멈추지 않고 길은 또 험한지. 붙잡고 물어볼 아버지는 안계시고 수집품들만 덩그라니 남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그것들이 힘이 되어줬다. 오래 내 곁에 있어준 것들, 더 오래 전부터 존재해오던 것들. 해변가에서 주워온 몽돌은 그냥 돌이 아닌 것이다. 거기엔 마음이 담겼다. 이 어여쁜 것을 딸에게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 순정한 사랑. 인사동에서 사온 당나귀 가족 조각에는 즐거움이 담겼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이콘화에는 우리를 위한 기도가 담겼고, 모든 수집 하나하나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있다. 그러니 헤매일 때 그 진심이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다. '시간의 손'이 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수집에 한계가 있을까, 자신의 시선과 사유를 있는 힘껏 수집한 작가
나는 되도록 수집하지 않는다. 물론 퍽 많이 그림을 사지만 기를 쓰고 모으는 건 아니다. 그냥 보고 누리고 즐기려는 목적이다. 나는 애지중지 하는 것보다 팍팍 쓰는 것이 좋다. 예술을 좋은 삶의 콘텐츠로 사용하자고 부르짖는데 그림을 떠받들고 살던 아버지가 들으면 떼끼! 이놈! 하시려나. 혼나도 좋으니 아버지 손잡고 서울시립미술관 같이 가고 싶다. 구본창 작가의 수집들을 보며 오, 놀라워라! 웃으며 수다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