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연일 화제다. 남장 여자나 타임 슬립(Time Slip) 같은 것은 기본 설정으로 깔고 가는 퓨전 사극의 대유행 속에서, 이런 정통 사극은 오히려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작년 초겨울쯤 드라마가 시작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관련 기사도 아직 많이 나오고, 고려거란전쟁에서 파생된 다양한 주제의 유튜브 콘텐츠도 많아지는 걸 보니,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듯하다.

사극은 참 어려운 장르다. ‘역사가 스포일러’이지 않은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흥미를 계속 유발할 수 있을까, 그것이 흥행의 관건일 것 같다. 사실 필자는 사극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그런 문제인데, 소품이 시대와 맞지 않는 장면이 나오는 순간부터 보기 싫어진다.
어떤 이집트 전문가는 ‘고증이 잘못된 콘텐츠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즐겁게 볼 수 있다’라는 이야기도 하던데, 필자는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몇 년 전 방영된 태종 이방원도 보다가 말았고, 이번의 고려거란전쟁도 초반에 그만두었다.

문제는 목종의 연회 장면부터였다. 즐거워하는 백성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목종을 클로즈업하는데, 앗, 주전자가 미래에서 왔더이다. 그 다음주였나, 병상에 누워있는 목종의 머리맡에 놓인 향로도 미래에서 왔고, 한참 뒤 재방송에서 발견한 거란의 사신들과 고려의 신하들이 만나는 장면에서도, 미래에서 온 주전자가 있었다.

고려거란전쟁은 993년(성종 12년)부터 1019년(현종 10년)까지 거란이 고려를 세 차례에 걸쳐 침략한 전쟁을 말한다. 시대 배경이 10세기 극 말에서 11세기 극 초로 한정되어 있다. 시기가 명확한 사건을 다룬다는 것의 한계일까, 시대가 맞지 않는 소품의 등장이 거슬려 드라마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뭐가 잘못되었냐 하실지도 모르겠다. 고려시대에 조선백자 놓은 것도 아니고, 다 청자를 썼는데 뭘 그리 심하게 틀렸느냐 그 말이다.

필자가 지적한 주전자와 향로가 얼마나 미래에서 온 것인가 하면, 최소 150년에서 최대로는 300년쯤은 될 것 같다. ‘어차피 다 옛날 얘긴데 뭐 어떠냐’라고 하기엔, 조금 불편하다. 한번 이렇게 비유해 보자. 조선 철종 시대(재위:1849~1863)를 배경으로 한 극에 소품으로 컬러 TV가 등장하거나, 서책 대신 e-book이나 스마트폰이 등장한다면 어떨지? 아니면, 세종대왕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한글로 글을 쓰는 장면이 등장한다면, 과연 용인이 가능할지?

그럼 고려거란전쟁 시기엔 어떤 그릇이 등장해야 정답인가? 우리에겐 다행히도 990년대의 도자기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남아있다. 바로 얼마 전 국보로 승격된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청자 '순화4년'명 호〉가 그것이다. ‘순화4년명’이라는 말은, 도자기에 ‘순화4년 淳化四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銘) 있다는 뜻인데, ‘순화’는 중국 송나라 황제 태종의 연호이니, 곧 순화 4년은 993년을 말한다.

청자 '순화4년'명 호, 고려 993년, 국보,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청자 '순화4년'명 호, 고려 993년, 국보,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이 청자의 빛깔은 무슨 색인가? 갈색? 황색? 어쨌든 우리가 잘 아는 비취빛의 청자색과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을 비롯해 가마터나 유적지 발굴 등의 현장에서 수습된 청자들을 근거로 볼 때, 10세기 말의 청자는 녹갈색, 쉽게 말해 올리브그린 빛깔을 띤 것으로 보인다. 10세기 말은 고려에서 청자를 이제 막 만들기 시작한 시기였다. 모든 기술이 다 그렇지만, 초반부터 절정의 수준에 달할 수는 않은가? 우리가 잘 아는 비색(翡色) 청자는 최소 100년에서 150년 뒤인 12세기가 되어야 최고 경지의 색과 형태에 이른다. 목종의 병상 머리맡에 놓여있던 향로의 모델인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문 향로〉가 바로 그 12세기 청자 제작 수준의 절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명품이다.
청자 투각 칠보문 향로, 고려 12세기,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투각 칠보문 향로, 고려 12세기,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칠보 문양을 투각(透刻)하여 구형(球形) 장식도 만들고, 몸체에는 잎사귀 모양을 겹겹이 붙여 다듬고, 토끼 모양 다리도 곁들인, 정말 옥을 조각한 듯한 아름다운 모양과 빛깔이 놀랍다. 그러니, 990년대를 사는 목종의 침소에 1150년경의 기술이 말이 되느냔 말이다.
더 말이 안 되는 것은 주전자들이다. 먼저, 거란 사신들과의 회담 장면에 등장한 주전자의 모델은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국보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인데, 여기엔 비색 청자에서 한층 더 발전된 기술이 적용되었다.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 고려 13세기, 국보, 삼성미술관 리움
청자동채 연화문 표형 주자, 고려 13세기, 국보, 삼성미술관 리움
비색의 청자에, 산화동, 곧 구리를 안료로 써서 다른 색을 더해 장식성을 높였다. 불이 세면 안료가 다 타버리고, 시간을 잘못 맞추면 원하는 붉은 빛깔을 얻지 못해 상당한 숙련이 필요한 기술이다. 특히나 이 유물은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실력자 최항(?~1257)의 묘지에서 출토된 것이므로 제작시기를 13세기로 특정할 수 있는데, 거란 사신과의 자리에 사용되었다니, 200년의 시간을 거슬러 날아온 셈이다.

목종의 연회에 사용된 주전자는 한술 더 뜬다. 그 주전자의 모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상감 동화 포도동자문 표형 주자〉인데, 유물의 표면 전체 가득 흑색과 백색의 상감으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포도엔 탐스럽게 붉은색으로 산화동 채색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작품은 13세기 후반부에 제작된 작품이다. 13세기 후반이면 적어도 1250년 이후를 말하니, 목종의 재위 기간을 기준으로 거의 300년쯤 뒤 미래에서 온 것이다. 상감청자는 고려청자 발전과정의 후반부에 위치한다. 쉽게 생각해서, 그릇에 상감 문양이 조금이라도 있다? 그럼 13세기로 보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 색깔 문양이 그릇 전체에 많다? 그럼 확실히 13세기 중반 이후다.
청자상감 동화 포도동자문 표형 주자와 승반, 고려 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상감 동화 포도동자문 표형 주자와 승반, 고려 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32회로 기획되었다는 이 드라마도 어느덧 극의 후반부로 달려가는 듯하다. 인기의 반증일까, 어쨌든 극 내용도, 그 밖의 상황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누구도 과거에 가본 자는 없기에 무한정 지적할 수는 없고, 재미를 위해서 각색하는 것은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뭐든지 정도라는 게 있지 않은가.

사극 제작 관계자들에게 간곡히 청해본다. ‘소품은 극의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기에, 중요하지 않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몰입을 깰 수는 있습니다. 서책과 박물관에 정답이 많이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부디 세세히 살피어 옥에 티 없는 걸작을 만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