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0일, ‘노량: 죽음의 바다’(2023, 이하 ‘노량’)가 개봉하면서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이 막을 내렸다. ‘명량: 회오리바다’(2014, 이하 ‘명량’) 개봉 시점부터 따져도 장장 10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노량’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2편이었던 ‘한산: 용의 출현’(2022, 이하 ‘한산’)과 동시 제작에 성공한 작품으로, 야간 해전 신의 스펙터클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을 장엄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개봉한 지 한 달 동안 이 영화를 본 관객은 450만 명 정도로, 전작들에 비해 대중적인 호응은 낮은 편이다. ‘노량’보다 약 한 달 전에 개봉한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약 1300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영화계의 전반적인 침체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시리즈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이순신 3부작의 첫 영화인 ‘명량’은 지금까지 영화진흥위원회 공식통계로 1761만3682명이 관람한 바 있다. 이는 역대 관객수 1위의 성적이다. 관람객수가 아니라 매출액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자면 이미 ‘극한직업’(감독 이병헌, 2018)에 1위 자리는 내주었고, 앞으로 물가상승, 특수관 증가 등의 요인이 추가되면 순위가 더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많은 관객들이 OTT로 눈을 돌린 현시점에서 볼 때, 1761만명이라는 최다 관객수 기록은 깨지기 어려운 위업이다.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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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이 이처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먼저,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위인으로 꼽히면서도 수십 년 동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시 21세기 블록버스터에서 재현한 성웅의 활약과 해전신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은 매우 컸다. 또한, 이순신 장군역을 국민배우로 불리는 최민식이 맡았고, ‘최종병기 활’(2011) 등의 히트작이 있는 김한민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도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한산’과 ‘노량’이라는 이후 시리즈와 견주어도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명량’의 관객수는 텍스트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명량’은 명량해전을 앞둔 시점에 이순신 장군이 처해 있는 군사적,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선군과 일본군이 각각 내부적 갈등, 혹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반부는 ‘한산’과 ‘노량’에도 반복된다. ‘명량’에서 주목해 볼 부분은 3부작 중 이순신 장군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명량’은 용장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장면마다 장군의 다양한 감정을 강조한다.

그는 아들을 비롯한 청년들에게는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군율을 어긴 부하의 목을 치는 지엄한 리더로서 군인들의 긴장감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또한, 꿈에 죽은 부하들이 나타날 때나 거북선이 불탈 때 울부짖는 모습에서는 보다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바다를 바라보며 작전을 생각할 때나 왕에게 저 유명한 편지를 쓸 때는 지적이고 차분한 모습도 볼 수 있다.

‘한산’과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의 비중이 적게 느껴지는 것은 절대적인 분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사나 감정 표출신이 많지 않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는데, ‘명량’은 전반부부터 이순신이라는 주인공에 이입할 수 있는 신들이 계속 등장한다. 특히 ‘노량’의 전반부는 조선, 일본, 명나라 3개국의 국제정세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 정작 주인공으로서 이순신 장군이 잘 부각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는 흥행 부진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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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모두 영화의 후반부는 치열한 전투신으로 채워진다. 8년이라는 시간차가 있는 만큼 2편과 3편에서 더욱 화려하고 정교해졌지만, ‘명량’이 당시 CG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해전신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와 맞서는 전쟁의 스릴, 승리의 짜릿함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략과 용맹함도 충분히 볼 수 있다.

‘명량’은 ‘백성들이 함께 일군 승리’라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사용했는데, 정씨여인(이정현)과 임준영(진구)의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임준영의 희생과 정씨여인의 도움은 승리의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한다. 뒤이어 장군의 판옥선이 가라앉으려 하자 백성들이 고기잡이 배를 끌고 나와 판옥선을 받쳐주면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는 신도 힘주어 연출되어 있다. 손에 피가 날 때까지 노를 젓던 백성들은 전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후손들이 우리가 개고생 한 걸 모르면 후레자식들이라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신들은 과잉된 감정을 표출한다고 해서 ‘신파’로 불리며 비판받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신파야말로 ‘명량’을 흥행시킨 요인 중 하나다. 작품성에 있어서는 신파 없이 건조하게 전투에 집중한 ‘한산’의 평가가 더 좋았지만, 관객수는 약 726만명으로 ‘명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콘텍스트적인 맥락에서 영화 개봉 3개월 전 있었던 세월호 사건이 흥행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명량’의 신파적 요소들이 어떤 관객에게는 배에서 나오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로 가라앉은 이들에 대한 애도와 연결되면서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했던 것 같다.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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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 순서대로 관객수가 정해진다면 ‘명량’이 역대 1위를 차지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아마 ‘한산’, ‘노량’ 세 편만 놓고 비교해 봐도 평가는 갈릴 것이다. 그러나 개봉 당시 관객들이 기대한 이순신 장군 영화에 가장 부합했던 것은 ‘명량’이었다. 사실, 역대 관객수 1위 영화의 주인공이 민족의 성웅이라는 점은 큰 상징성을 지닌다. 과연 1761만명이라는 기록이 깨지는 날이 올지, 어떤 영화가 그 자리를 대신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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