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 전경. GettyImagesBank.
이스라엘 예루살렘 전경. GettyImagesBank.
2022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 <네타냐후>의 원서 제목은 '네타냐후 가족(The Netanyahus)'이다. 원서의 부제 '매우 유명한 가족의 역사에서 사소하고 무시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소설은 베냐민 네타냐후 현 이스라엘 총리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감추지 않는다.

이스라엘 최장기 집권한 총리이자 현재 팔레스타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제시한 '두 국가 해법(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만들어 이스라엘과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한다는 해법)'에 반대해 '전쟁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그 네타냐후 총리 말이다. 그는 어떤 가족과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소설가 조슈아 코언은 역사학자이자 유대계 미국인 루벤 블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가상의 인물 루벤은 미국 어느 대학 역사학과의 신참 교수로, 새로운 교수 채용 면접위원이 된다. 그는 오로지 유대계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무명 역사학자 벤시온 네타냐후(네타냐후의 아버지)를 채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견을 내야 한다. 게다가 블룸은 네타냐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세 아들까지 집에서 재워주게 된다. 소설은 이 하룻밤 소동극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네타냐후 아버지에 대한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의 회고가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 소설의 주인공의 이름에 블룸이 들어가는 이유다.

소설 속에서 네타냐후 가족은 <걸리버 여행기> 속 짐승에 가까운 야만족, '야후'에 비유된다. 그만큼 무례하고 안하무인인 행동을 일삼는다. 소년 네타냐후는 거실 카페트나 소파, (당시로서는 매우 귀했던) 컬러 TV를 망가뜨리는 정도로만 등장하지만.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의 가족을 '야만족'으로 묘사해버린 소설 [책마을]
소설은 네타냐후 가족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대계 미국인인 주인공이 미국 땅에 정착한 뒤 느끼는 정체성 혼란, 시온주의자(시온의 땅, 즉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를 재건하려는 유대인 민족주의운동가들)를 마주하며 느끼는 복잡다난한 심경 등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작가 조슈아 코언은 유대인 정체성을 기반으로 미국에서 작품활동을 해왔다.

루벤의 장모는 네타냐후 아버지의 면접에 동원됐다는 말을 들은 뒤 루벤이 처한 딜레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약 자네가 그 위원회에 참여해서 그 유대인을 채용하기로 결정한다면, 사람들은 자네가 유대인이라서 좋게 봐줬다고 말할 걸세. 만약 자네가 그 유대인을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사람들은 자네가 유대인이라서 좋게 봐주는 것 같은 인상을 피하려 한다고 말할 거고."

작품은 네타냐후 총리의 성장 배경을 이해할 만한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네타냐후 아버지는 시온주의자 역사학자로, 역사적 사실을 유대인 신념에 따라 해석한다. 동료로부터 "유대인의 과거를 정치화해서, 그들의 트라우마를 선동으로 바꿔놓는 경향"이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실제로 역사학자였던 네타냐후의 아버지는 15세기 스페인 치하의 유대인 종교재판과 홀로코스트를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했다. 15세기부터 3세기간 이어졌던 유대인 탄압은 개종, 즉 종교가 아닌 인종이 원인이었다는 주장이다. 학계로부터 큰 공감을 얻진 못했지만, 유대인 수난사는 종교가 아닌 인종적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벤시온의 역사관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스라엘 주권지역으로 만드는 데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유대인은 어디를 가도 박해받으니 독립된 나라를 세워서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오늘날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반전 시위대가 "시온주의는 인종차별이다"고 외치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네타냐후 아버지의 민족주의 신념에 경도된 역사 해석을 들은 뒤 블룸의 부인은 이렇게 읊조린다. "믿음이 전혀 없는데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은 정도가 아니라 기뻐… 내가 신념 없이 늙어간다는 게 기뻐…"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네타냐후의 아버지 미국 대학 교수 자리를 얻는데 성공했다. 네타냐후는 수십년 동안 이스라엘과 미국을 오가면서 군복무, 미국 대학 진학, 미국 대형 컨설팅그룹, UN 주재 이스라엘 대사 등을 거친 뒤 이스라엘 정계에 입문한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이자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총리였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