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파헤치는 사람들, 뼈만 남은 가족…영화 '추락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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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황금종려상 수상작…관계를 해부하는 숨 막히는 법정물
설산으로 둘러싸인 통나무집 근처에서 한 남자가 추락한 상태로 발견된다.
눈밭에 피를 흩뿌린 채 숨이 멎은 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찾고, 산드라(샌드라 휠러 분)가 아들의 부름에 놀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프랑스 영화 '추락의 해부' 속 가족에게 비극이 시작되는 첫 장면이다.
각각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모자는 상실의 아픔을 다독이기도 전에 더 큰 관문과 마주한다.
사망한 남자 사뮈엘(사뮈엘 타이스) 부검 결과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자 검찰이 산드라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다.
유유자적한 삶을 꿈꿨을 가족의 보금자리는 수사관들의 구둣발에 짓밟힌다.
어린 다니엘은 사고 당시 정황을 끊임없이 진술하는 것은 물론 마네킹 추락 실험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소리를 여과 없이 듣는다.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용의자로 지목된 산드라다.
그는 자신이 사뮈엘을 살해한 게 아니란 걸 밝히려면 남편이 자살했다고 주장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산드라가 기소된 후 영화의 무대는 법정으로 옮겨간다.
좁은 공간에서 검사와 변호인, 증인, 판사 그리고 피고인 산드라가 벌이는 진실 공방은 숨이 막힐 정도로 팽팽하다.
관객들은 잠시 배심원이 돼 파편적 정보를 바탕으로 산드라가 범인일지 아닐지를 추측하게 된다.
하지만 검사와 그가 내세운 증인들은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사뮈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
이들은 산드라가 사뮈엘을 어떻게 살해했느냐를 증명하기보다는 당시 부부 관계를 봤을 때 그가 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산드라의 성적 취향과 숨기고 싶던 비밀, 남편과의 내밀한 관계가 낱낱이 들춰진다.
재판을 참관하는 다니엘은 전혀 몰랐던 부모의 갈등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산드라와 사뮈엘이 서로를 비난하고 몰아붙이는 플래시백 장면은 다니엘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어쩌면 산드라가 정말로 남편을 죽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단서가 그날의 진실을 모두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각자 진실이라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확신하는 사람들 틈에서, 진정한 진실은 설원 속에 파묻힌 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추락사한 남자의 사연을 해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해부되는 건 산드라라는 한 여자와 그가 관계 맺은 사람들이다.
검사와 언론은 살인 여부와 상관 없이 산드라와 사뮈엘의 사생활을 파고들고, 아들은 몰라도 되는 어른들의 세계를 마주한다.
이곳저곳 파헤쳐진 이 가족은 결국 뼈대만 남아 너덜너덜해진다.
트리에 감독은 관계의 추락을 다루는 한편 사랑이 쇠퇴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려 했다고 한다.
그의 연인인 각본가 아서 하라리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트리에 감독은 이 영화로 '피아노'(1993)의 제인 캠피언, '티탄'(2021)의 쥘리아 뒤쿠르노에 이어 여성 감독으로는 세 번째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최근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비영어권작품상과 각본상을, 크리틱스초이스 어워즈에서는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추락의 해부'를 작년 최고의 영화로 꼽기도 했다.
산드라를 연기한 독일 배우 휠러는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트리에 감독은 처음부터 산드라 역으로 휠러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작업했다.
'토니 에드만'(2017), '인 디 아일'(2018) 등으로 유명한 휠러는 트리에 감독의 전작 '시빌'(2019)에도 출연했다.
휠러는 단독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면서도 긴 러닝타임 동안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특히 남편과 말싸움을 벌이며 점차 감정이 고조되는 긴 시퀀스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는 31일 개봉. 152분.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눈밭에 피를 흩뿌린 채 숨이 멎은 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찾고, 산드라(샌드라 휠러 분)가 아들의 부름에 놀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프랑스 영화 '추락의 해부' 속 가족에게 비극이 시작되는 첫 장면이다.
각각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모자는 상실의 아픔을 다독이기도 전에 더 큰 관문과 마주한다.
사망한 남자 사뮈엘(사뮈엘 타이스) 부검 결과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자 검찰이 산드라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다.
유유자적한 삶을 꿈꿨을 가족의 보금자리는 수사관들의 구둣발에 짓밟힌다.
어린 다니엘은 사고 당시 정황을 끊임없이 진술하는 것은 물론 마네킹 추락 실험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소리를 여과 없이 듣는다.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용의자로 지목된 산드라다.
그는 자신이 사뮈엘을 살해한 게 아니란 걸 밝히려면 남편이 자살했다고 주장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산드라가 기소된 후 영화의 무대는 법정으로 옮겨간다.
좁은 공간에서 검사와 변호인, 증인, 판사 그리고 피고인 산드라가 벌이는 진실 공방은 숨이 막힐 정도로 팽팽하다.
관객들은 잠시 배심원이 돼 파편적 정보를 바탕으로 산드라가 범인일지 아닐지를 추측하게 된다.
하지만 검사와 그가 내세운 증인들은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사뮈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
이들은 산드라가 사뮈엘을 어떻게 살해했느냐를 증명하기보다는 당시 부부 관계를 봤을 때 그가 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산드라의 성적 취향과 숨기고 싶던 비밀, 남편과의 내밀한 관계가 낱낱이 들춰진다.
재판을 참관하는 다니엘은 전혀 몰랐던 부모의 갈등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산드라와 사뮈엘이 서로를 비난하고 몰아붙이는 플래시백 장면은 다니엘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어쩌면 산드라가 정말로 남편을 죽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단서가 그날의 진실을 모두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각자 진실이라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확신하는 사람들 틈에서, 진정한 진실은 설원 속에 파묻힌 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추락사한 남자의 사연을 해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해부되는 건 산드라라는 한 여자와 그가 관계 맺은 사람들이다.
검사와 언론은 살인 여부와 상관 없이 산드라와 사뮈엘의 사생활을 파고들고, 아들은 몰라도 되는 어른들의 세계를 마주한다.
이곳저곳 파헤쳐진 이 가족은 결국 뼈대만 남아 너덜너덜해진다.
트리에 감독은 관계의 추락을 다루는 한편 사랑이 쇠퇴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려 했다고 한다.
그의 연인인 각본가 아서 하라리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트리에 감독은 이 영화로 '피아노'(1993)의 제인 캠피언, '티탄'(2021)의 쥘리아 뒤쿠르노에 이어 여성 감독으로는 세 번째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최근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비영어권작품상과 각본상을, 크리틱스초이스 어워즈에서는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추락의 해부'를 작년 최고의 영화로 꼽기도 했다.
산드라를 연기한 독일 배우 휠러는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트리에 감독은 처음부터 산드라 역으로 휠러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작업했다.
'토니 에드만'(2017), '인 디 아일'(2018) 등으로 유명한 휠러는 트리에 감독의 전작 '시빌'(2019)에도 출연했다.
휠러는 단독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면서도 긴 러닝타임 동안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특히 남편과 말싸움을 벌이며 점차 감정이 고조되는 긴 시퀀스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는 31일 개봉. 152분.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