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이대 인근 골목 건물이 줄지어 공실인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서울 서대문구 이대 인근 골목 건물이 줄지어 공실인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반년 넘게 가게 유지가 어려운 상황인데, 인건비와 음식 재료비는 진작에 오르고 가스비까지 오르다 보니 너무 힘들어요. 코로나 기간 끝나고 학생들이 조금 오는가 싶더니 다시 없어져서 매출이 반토막 났어요. 학생들이 몰려와서 식사 한 끼하고 가는 풍경이 그리울 정도예요"

성북구와 서대문구가 전년 대비 폐업률이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에 구매력이 하락한 MZ(밀레니얼+Z)세대 탓에 대학가 상권이 무너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엔데믹(풍토병화) 후 훈풍이 부는가 했던 대학가에 한파가 지속되는 모양새다.

"고담시티 됐다"…성북구 폐업률 5.9%P 급증

18일 한경닷컴이 행정안전부 지방인허가에서 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 데이터를 가공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성북구 폐업률은 16.0%로 전년 대비 5.9%포인트 급증해 폐업률이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다음으로 폐업률이 많이 늘어난 곳은 서대문구로 전년 대비 4.3%포인트 증가했다.

한경닷컴은 폐업률을 파악하기 위해 폐업 업체 수를 총 업체 수(영업업체+폐업업체)로 나누어 계산했다. 일반·휴게 음식점에는 한식·중식·일식·분식·커피전문점 등 대부분 외식업종이 포함된다. 외식업 폐업률 지표는 자영업 현황을 파악하는 데 유의미한 지표로 활용된다.
표=신현보 기자
표=신현보 기자
성북구는 고려대·성신여대·동덕여대·한성대·한국예술종합학교(석관동 캠퍼스), 서대문구는 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가 각각 위치한 곳으로 대표적인 대학가 상권이 형성된 지역이다. 최근 물가 상승 압박이 극심해진 학생들과 사회 초년생을 중심으로 내수가 위축되면서 대학가 상권이 크게 흔들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이날 오전 찾은 고려대 인근 상권인 안암역 주변에는 공실인 상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주로 찾는 맛집도 최근 들어 폐업한 곳이 상당한 것으로 확인된다. 13년째 이곳에서 철판 두루치기 집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운영했던 2개 매장 중 한 곳을 정리했다"면서 "임대료와 인건비를 버틸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 유동 인구가 '100'이었다면 지금은 '70' 수준"이라며 "대학가는 저렴한 가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가격을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북구 고려대학교 인근 안암오거리 골목의 모습. /사진=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성북구 고려대학교 인근 안암오거리 골목의 모습. /사진=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고려대학교 인근 공실로 비어있는 상가 건물의 모습. /사진=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고려대학교 인근 공실로 비어있는 상가 건물의 모습. /사진=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인근에서 7년째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는 업주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0% 정도 줄었다. 엔데믹이 오면 상권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유동 인구는 코로나 때와 별반 차이가 없고, 돌아다니는 사람마저 빵을 잘 안 사 먹는다"며 "올해 임대료까지 올라 일단 직접 근무하며 인건비를 최대한 절약하고 있지만 사실 버티기 아주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고려대 출신의 20대 직장인 한모씨는 "씁쓸하지만 친구들끼리 '안암이 고담시티가 됐다'고 이야기한다"며 "후배들한테 들어보면 이젠 학생들이 수업을 마친 후 대학가에서 놀지 않고 성수 등 인근 '핫플'로 떠나는 분위기라더라"고 전했다. 대학생 윤모씨는 "요즘 외식비가 많이 올라 대학가 식당도 '저렴하다'는 메리트가 안 느껴진다"며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학식을 먹는 후배나 동기들이 전에 비해 확실히 많아졌다"고 말했다.

신촌·이대 썰렁하다 했더니…서대문구 폐업률 증가율 2위

서울 서대문구 신촌 메인 거리 건물 1층에 붙은 '임대' 표시. /사진=김세린 기자
서울 서대문구 신촌 메인 거리 건물 1층에 붙은 '임대' 표시. /사진=김세린 기자
신촌에서 32년째 운영 중인 닭갈비 전문점 직원은 "오래된 가게들은 단골 덕분에 그나마 버티는 거지, 주변에 새로 생긴 가게들은 자리를 못 잡으니까 금방 나갔다"며 "신촌 내에서 잘 유지되는 가게는 20~30% 정도라고 보면 된다. 우리 가게 옆 건물도 임대료가 1200만원 정도로 알고 있는데, 3~4년째 비어있다"고 토로했다.

5년째 이대 인근에서 양식집을 운영해온 사장은 "주변에도 이미 폐업한 사람이 많고 창업을 앞둔 사람도 이대 상권을 피하는 분위기다. 우리 가게도 더는 버티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오는 3월 폐업을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4년째 떡볶이집을 운영 중인 사장 부부도 "이대에 자주 찾던 외국인들도 잘 안 보이고 학생들도 없어서 매출 타격이 크다. 예전엔 아르바이트생도 고용했는데 인건비 때문에 못 하고, 한마디로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연 건데 1년째 회사를 다시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 이대 상권은 현재 완전히 망했다고 보면 된다"고 푸념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대학가 상권은 문화적 측면에서는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지만 일반인들의 소비가 뒤따라와야 판이 커지는 구조로 가는데, 코로나19 이후 회식도 없어지고 불경기에 외식 수요 자체가 줄어서 쇠락하게 됐다"며 "상인들 말을 들어보면 통상 송년회 예약이 11월이면 마감되는데 지난해 12월에는 텅텅 비다시피 했다고 한다. 줄 서는 맛집에만 몰려가는 등 트렌드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 대표는 "이대 상권은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한 부분이 큰 영향을 줬다. 신촌은 홍대·합정 등 인근의 골목 상권이 팽창한 영향으로 기존 수요를 빼앗기는 등 신흥 상권 쏠림 현상으로 타격감이 큰 곳"이라며 "불경기일 때는 임대료도 중요한 요소인데, 이대·신촌 임대료는 여전히 너무 높다 보니 주변부로 이동하는 경향성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 기반 소비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잡기 위해 이젠 대학가도 체험형 공간이나 온라인 소비와 연계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설 것이라 본다"며 "다만 이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력이 있는 사업자가 나서야 하므로 대학가에서 소자본으로 창업하는 건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 본다"고 내다봤다.

용산·양천도 '비상'

용산구도 숙명여대 인근 상권, 지난해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외식비를 줄이려는 직장인들이 대거 몰린 용산역 인근 상권이 포함돼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폐업률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양천구는 지난해 폐업률 증가율이 4.0%로 용산에 이어 4위에 해당하지만, 폐업률 자체는 22.5%로 서울시 자치구 중 가장 높았다. 양천구 외식업 폐업률은 벌써 3년째 서울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팬데믹이 시작된 2019년과 이듬해인 2020년까지만 해도 버틸 만 했으나, 2021년에는 21.4%, 2022년 18.5%에 이어 이번에도 20%대를 넘기면서 위기가 고조되는 분위기다.

양천구는 대부분 거주 밀집 지역에다, 목동 현대백화점 등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랜드마크가 부재해 타지역 거주민 방문이 뜸한 곳 중 하나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나마 팬데믹 시기에는 배달 수요 등으로 견디다 최근 외식업 수요가 급감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양천구 지역 자체가 건물과 시설 등 노후도나 수명이 상당 부분 떨어지는 편인데, 주차 시설 등도 미흡하다 보니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편의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라며 "여기에 경제 상황이 더 안 좋아져서 유동 인구가 줄고, 상권 전체가 빠른 속도로 침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양천구는 좋게 보기 어려운 시장 환경 중 하나"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