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사회의 사전 승인 없이 대주주 등이 회사의 사업기회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사가 자기거래를 하거나 고의나 중과실로 주주 등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소액주주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온라인 전자주주총회 제도화, 이사의 사익 추구행위 차단 등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상법 개정은 이사회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우선 상법 392조의 2에 담긴 ‘사업기회 유용 금지’ 조항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2011년 마련된 이 조항에 따르면 이사는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하지 못한다. 이를 어길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사회의 승인이 ‘사전 승인’인지 ‘사후 승인’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해당 조항을 ‘사전 승인’으로 고쳐 대주주 등의 사업기회 유용을 이사회가 사전에 통제하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사업기회 유용 행위는 범위가 넓다. 사익 추구 행위로 판단되면 대주주의 지분 매입도 경우에 따라 사업기회 유용에 해당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1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실트론(옛 LG실트론) 지분을 인수한 것이 SK㈜의 사업기회를 유용한 것이라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대주주 일가가 지분을 많이 가진 회사에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을 양도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정부는 이사의 자기거래 금지,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사에게 실질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는 방안에는 선을 그었다. 구상엽 법무부 법무실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주주 보호의 취지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하지만 이런 규정이 생기더라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