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 사진=한경DB
금융위원회. / 사진=한경DB
"부채비율 200%? 말도 안 됩니다."

1998년. 당시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원장이자 금융감독위원장은 기업·금융시장에 대한 구조조정과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기업들에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맞추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를 넘어서면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경고였다. 황당해하는 기업들이 많았지만, 서슬 퍼런 정부의 기세 밀려 입을 다물었다. 어떤 기준에서 '부채비율 200%'를 제시했는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정부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기업에 대한 솎아내기에 나섰다. 통계로 분류하고, 망신도 주겠다고 했다. '부채비율 200%'와 비슷한 금융당국의 낙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17일 발표한 ‘2024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기업들의 주가 제고 유도 방안을 발표했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주가를 비롯한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방안을 담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PBR 지표가 낮은 곳 등이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밝히지 않은 경우 명단을 공개하는 등의 ‘네이밍 앤드 셰이밍’(공개 거론해 망신 주기) 전략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주가가 낮은 기업을 선별해 망신 주겠다는 것이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금융위가 표적으로 삼은 '주가가 낮은 기업' 기준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금융위는 구체적으로 이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위의 정책 내용과 금융위원장 발언에서 가늠할 만한 내용이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작년 말 기준 1.1배에 그친 국내 증시 평균 PBR을 일본 수준인 1.4배에서 높게는 미국 상장주 평균인 4.6배까지 끌어올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금융위는 한국거래소와 협의해 PBR 1배 미만 상태의 기업들이 어디인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공시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과 신설 공시 제도로 산출해본 주가가 낮은 기업은 'PBR 1배 미만 기업'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PBR 1배 미만 기업에 낙인을 찍는 게 맞느냐는 비판도 있다. 주가매출비율(PSR), 주가수익비율(PER) 등 다양한 가치 평가 수단 가운데 PBR을 고른 배경에 대해서도 시원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금융위가 작위적으로 선별한 '주가 낮은 기업'에 낙인찍기와 망신 주기를 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원칙없는 '낙인찍기'는 두고 두고 분란을 일으킨다.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타계할 때까지 '부채비율 200%'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외환위기 직후 제시된 이 기준이 멀쩡한 대우그룹을 해체했다고 항변한 바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국 기업들의 PBR이 상당히 낮은 수준인 것은 맞지만 'PBR 1미만 기업'을 나쁜 기업의 기준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기업들을 망신줄 생각도 없다"고 설명했다.

김익환/선한결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