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경쟁, 비즈니스, 진보, 혁명, 대학….

우리가 논하고 사고하는 이 용어들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최근 출간된 <근대 용어의 탄생>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즉 문명을 구성하고 사는 시민들이 자주 쓰는 말의 기원을 다룬다.

저자는 윤혜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연세대 인문학연구원장을 역임하고 19세기 영국지성사와 비교문학을 연구·강의 중이다.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키워드를 탐구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등 문학 작품이 틈틈이 인용되는 서술 방식은 저자의 배경 덕분이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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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담론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의 탄생 배경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타인의 작품·제품에 대한 평론이나 피드백의 의미를 담고 있는 '리뷰(review)'는 17세기 초까지 용례를 살펴보면 '다시 보다'는 문자 그대로 필자가 자신의 글을 다시 읽고 수정하는 뜻으로 사용됐다. 이 말이 보편화된 장르로 발전한 건 <프랑스 상황 리뷰 및 국내 사건들에 대한 관찰>이라는 제목의 정기간행물이 1704년 간행되면서부터다. 1712년부터는 아예 제목을 <리뷰>로 축약했고, '리뷰'라는 단어는 '논평'이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근대 용어 대부분이 일본, 중국 등을 거쳐 들어왔다는 것.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탄생을 설명하려면 '민주주의'와 'democracy' 각각의 기원을 다뤄야 해 설명이 다소 산만하다.
프레지던트를 제왕적 분위기의 대통령으로 번역한 일본인들 [책마을]
다만 책은 번역 과정에서 발생한 격차와 괴리를 통해 근대 정치문화사를 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대통령(president)'다. 의장, 선출된 대표자를 뜻하는 라틴어 'praesident' 또는 'praesidns'에서 파생된 'president'에는 '다스리는' 통치의 의미가 담겨져 있지 않다. 이 말이 동아시아에서 제왕적 통치 권력의 느낌을 풍기는 '대통령'으로 번역한 건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의 작품이다.

책은 "일본을 강제로 개항하게 맏는 대국의 최고 권력자를 일본인들은 '의장'이나 '대리인'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그 배경을 추측한다. "미국 헌법이 견고하게 세워놓은 삼권분립의 균형과 견제의 정신을 음미할 정치문화가 전혀 없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국가의 수장이 (통치자가 아니라) 회의의 주재자라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