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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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가 유가증권시장에서 장기간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던 플랫폼주를 쓸어담고 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배터리주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종목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사모펀드는 증시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움직이는 '스마트 머니'로 여겨진다. 연초 주도주 공백기로 개인이 투자할 종목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사모펀드의 동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플랫폼주 쓸어담는 사모펀드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사모펀드가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플랫폼주를 쓸어담고 있다. 연초부터 지난 9일까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카카오로 모두 309억원어치를 사들였다. 두 번째로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네이버로 170억원어치를 쓸어담았다. 이들 종목은 코로나19 사태 직후 고점을 찍고 최근까지 낙폭이 워낙 컸다. 카카오 최근 주가는 2021년 고점 대비 약 3분의 1 수준이고, 네이버는 반토막이 난 상태다.
증시 반등에 베팅하는 사모펀드…연초 플랫폼·소부장 쓸어담았다
사모펀드가 이들 종목을 순매수하는 건 "향후 시장금리가 추세적으로 떨어지며 성장주로 분류되는 플랫폼주가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중앙은행(Fed) 데이터베이스(FRED)에 따르면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10월 19일 4.98%에서 지난달 27일 3.79%로 급락했다. 최근 반등해 4.01%(미국시간 지난 8일 기준)로 올라왔지만 여전히 고점 대비로는 낮은 수준이다. 시카고선물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선물 시장 참가자들은 오는 3월 Fed가 미국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63.6%로 높게 보고 있다.

이영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낮아지면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할인폭이 축소돼 성장주에게 긍정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며 "무심코 외면했던 성장주의 실적 개선 모멘텀에 대한 투자자의 생각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올 들어 경기 반등으로 광고매출 등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네이버의 새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CHZZK)' 등이 순항하면서 센티멘트(투자심리)도 개선되고 있다.

증시 베팅 강화하는 자산가들

한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는 "사모펀드는 최저 가입금액이 억대인 경우가 많고, 여기 투자할 수 있는 자산가들은 돈을 버는 방법을 더 잘 알고 있다"며 "이런 투자자를 상대하는 프라이빗뱅커(PB)나 펀드 매니저는 상대적으로 준비가 더 잘 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사모펀드는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에서 플랫폼주 외에 LG디스플레이(+106억원), 한국항공우주(+73억원), 하이브(+66억원), 한전기술(+65억원), 코웨이(+45억원) 등도 많이 순매수했다. 코스닥시장 순매수 1위는 지난해 7월 고점 대비 반토박 가까이 난 에코프로비엠(+228억원)이었다. 이밖에 코스닥시장에서는 반도체 소부장주를 사들인 경우가 많았다. 반도체용 인쇄회로기판 업체 심텍(+121억원), 반도체용 석영유리 및 쿼츠 제조업체 원익QnC(+69억원),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업체 에이직랜드(+51억원) 등이 코스닥시장 순매수 2~4위였다.

사모펀드는 올 들어 증시 베팅을 전체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사모펀드의 투자자산 중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달말 6.51%에서 이달 8일 6.39%로 감소했다. 사모펀드의 보유 현금은 증시가 상승 국면에 들거나 저평가 종목이 많아졌을 때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삼성증권은 SNI(고액자산가를 위한 PB 서비스 브랜드) 고객 3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7.2%가 올 한해 주식시장의 상승을 예측했다는 결과를 이달 초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사모펀드는 지난해말 주가 상승세가 두드러졌던 종목을 내다 팔아 차익을 실현하고 있다. 이달 2~9일 사모펀드가 가장 많이 순매도한 종목은 삼성전자로 모두 1368억원어치를 던졌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7.83% 상승, 코스피지수 상승률(+4.73%)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이어 두산로보틱스(-927억원), 알테오젠(-206억원), 에코프로머티(-185억원) 등도 많이 팔아치웠다. 이들 종목도 모두 지난달 20% 이상씩 올랐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