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한국의 경제 규모 못지않게 글로벌 확산세가 두드러진 것이 K컬처다. K팝을 필두로 영화·드라마·클래식·미술·문학·웹툰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 분야가 세계 무대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변방의 비주류 음악에서 미국, 영국 팝시장의 주류가 된 K팝은 지난해에도 수많은 기록을 새로 썼다. BTS 멤버 지민과 정국은 각각 솔로곡으로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 정상에 올랐다. 차트 진입과 동시에 1위로 직행하는 ‘핫샷(hotshot)’ 기록까지 썼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뉴진스, 스트레이 키즈, 에이티즈는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의 1위를 차지했다. K팝 공연장도 뜨거웠다. 블랙핑크는 지난해 세계 34개 도시에서 66회 공연을 통해 180만 관객을 동원했고, 세븐틴은 일본 도쿄를 비롯한 5개 도시 돔투어를 통해 51만여 명의 팬을 만났다.

클래식 발레 미술 등 다른 장르의 선전도 이어졌다. 바리톤 김태한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테너 김성호의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2023’ 가곡 부문 1위, 윤한결의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수상, 발레리나 강미선의 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무용수상 수상,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베를린필 상주음악가 선정 등 손꼽기도 벅차다. 한강, 천명관, 정보라 등 한국 소설가들은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최종 후보에 올라 성가를 드높였다.

공연시장도 커졌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위축됐던 공연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지난해 공연시장 매출은 사상 최초로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124억5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콘텐츠 수출액은 2022년 130억달러를 돌파하고 지난해에도 상승세를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K콘텐츠 수출 활기에 힘입어 K푸드(한국음식)도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빔밥, 불고기 등 한식 대표 메뉴는 물론 라면, 김밥, 떡볶이 등 분식점 메뉴들까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K컬처 전반의 이 같은 상승세가 단기적 현상이나 신드롬으로 끝나지 않고 글로벌 주류 문화로 정착, 확산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우리 스스로 문화를 잘 만들고, 잘 즐기고, 잘 파는 것이 중요하다. 엘리트 체육의 스타 선수만으로 스포츠산업이 클 수 없는 것처럼, 훌륭한 작가와 예술인만으로 K컬처의 융성을 담보하긴 어렵다. 문화는 삶이자 산업이다. 문화예술의 내수 기반이 튼튼해야 훌륭한 작가, 예술가가 많이 나올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문화산업도 꽃을 피운다. 그런 점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연말 발표한 ‘2023 국민 문화예술활동 조사’에서 문화예술 행사 직접 관람률이 58.6%에 그친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1년 동안 각종 전시, 공연 등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 100명 중 58명뿐이라는 것은 우리의 문화 소비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얘기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 자본이 K콘텐츠 시장에 유입되면서 제작 편수가 늘고 작품도 다양해졌지만, 생존의 기로에 선 토종 OTT의 살길을 찾는 것도 과제다. 정부가 올해 투자 대상에 제한이 없는 ‘전략펀드’를 새로 조성하기로 한 것이 주목되는 이유다. 정부와 기업이 공동 출자해 총 6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 세계시장을 공략할 대형 콘텐츠 제작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한 K콘텐츠 펀드 출자를 1980억원에서 3400억원으로 늘려 국내 콘텐츠 시장에 1조7400억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공급할 계획인데,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성 제고가 관건이다. 명품 콘텐츠 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