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재수 권하는 수능에 학부모만 '골병'
“큰아이에 이어 둘째도 재수를 하겠다고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재수가 필수 코스처럼 돼가네요.”

얼마 전 만난 한 50대 대기업 임원은 대학입시 얘기가 나오자 하소연부터 늘어놨다. “킬러문항을 없애겠다”는 입시당국의 발표에 기대했던 고3 딸이 ‘불수능’으로 인한 성적에 낙담해 재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고교 3년제가 사실상 4년제가 돼가고 있다는 푸념까지 더했다.

재수·반수를 비롯한 ‘n수생’이 가계 사교육비 부담의 새로운 복병으로 떠올랐다. 2000년대 20%대에 머물던 n수생 비중은 지난해 35%까지 치솟으며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킬러문항’ 배제 기대에 멀쩡히 학교를 다니던 대학생들까지 반수 대열에 합류한 여파가 컸다는 게 입시 현장의 설명이다. 지방대에서 ‘인서울’ 대학으로의 진입, 의대·치대·약대 쏠림도 요인으로 꼽힌다.

n수생 급증에 사교육비 부담 가중

재수하는 자녀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게 늘었다. 메가스터디 등이 운영하는 기숙 재수학원의 학원비는 최소 월 300만원에 달한다. 어림잡아 연간 4000만~5000만원가량이 n수 비용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자녀를 재수학원에 보낸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원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결코 엄살이 아니다.

최근 정부가 확정한 2028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 개정안에도 학부모들의 시름은 가시지 않고 있다. 현재 중학교 2학년부터 치르는 수능부터 문·이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수험생이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을 공통과목으로 치르게 하는 게 새 입시안의 핵심이다. 지금 수능은 국어는 2개 과목 중 하나, 수학은 3개 과목 중 하나, 사회과학은 무려 17개 과목 중 최대 2개를 선택하는 ‘다차 방정식’이다. 수학은 확률과 통계를 택하는 문과생보다 미적분·기하를 선택하는 이과생이 표준점수가 높은 독특한 구조다.

현재 수능 체계는 재학생보다 반수, 재수 등 n수생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할 뿐 아니라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판단이 교육당국이 개편안을 내놓은 핵심 배경이다. 막판까지 추가 여부를 고심한 ‘심화수학’을 배제하고, 수험생이 실제 받은 원점수와 전체 평균의 차이를 가중 평가하는 표준점수제 역시 난수표 같다는 지적이 많아 없애기로 했다.

수능 난이도 수용성 높여야

교육당국은 이번 개편안에 대해 “문과생도 의대를 지원할 수 있고, 이과의 문과 침공 현상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벌써부터 교육 현장과 학부모 사이에선 변별력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공통과목 시험으로 우수 학생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소위 ‘매력적인 오답’을 다수 배치하는 사실상의 불수능이 불가피할 것이란 얘기다.

바뀌는 수능에선 국어와 과학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학원가의 전망에 관련 전문 학원을 문의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종로학원 등에 따르면 불수능에 가까웠던 지난해 수능 이후 재수를 택하겠다는 재학생 비중이 40.4%에 달했다. 시험 결과에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큰 3등급의 경우 재수 의사가 47.6%로 절반에 육박했다. 냉온탕을 오가는 수능의 예측성과 수용성을 높이는 게 중요한 이유다. 재수를 권하는 수능이 지속되는 한 대입 개편을 통한 사교육비 경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