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저희 미성년자인데 신고할까요? 아니면 그냥 갈까요?"

경기도 부천시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박성배(가명·52)씨는 2022년 12월께 성인인 줄 알고 받았던 손님 무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박씨는 "모든 건 신분증 검사를 안 한 내 잘못"이라면서도 "눈앞에서 술에 취해 키득거리며 '영업정지' 운운하던 그들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고 떠올렸다.

박씨처럼 청소년에게 속아 술을 판매해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등 불이익을 당하는 자영업자들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구매자는 처벌하지 않고 판매자만 처벌하는' 제도적 허점이 청소년들의 법 위반 행위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3년간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해 적발되는 사례는 약 7000건에 달하며 매년 적발 건수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국 17개 시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해 적발된 건수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6959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1648건에서 2022년 1943건으로 늘었다. 2023년은 2022년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관측된다.

현행 청소년 보호법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식품위생법 제44조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주류를 제공하면 1차 적발 시 영업정지 60일 등 행정처분을 받는다. 신분증 위·변조, 도용 등으로 청소년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 행정처분을 면제해주는 내용의 구제 조항(식품위생법 제75조)도 있지만, 대다수의 피해는 업주가 오롯이 떠안는 실정이다. 행정처분 면제 사례는 2020~2022년 194건으로 전체 적발건수 대비 약 2.8%에 불과했다.
미성년자들이 술을 먹고 중간계산서에 남기고 간 메모.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미성년자들이 술을 먹고 중간계산서에 남기고 간 메모.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특히 판매자만 처벌받는다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청소년들이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술값을 내지 않겠다며 업주에게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최근에는 주류를 포함해 16만원어치를 먹어놓곤 "신고하면 영업정지인데 그냥 가겠다"는 메모만 남기고 달아난 고등학생 들도 있었다. 또 미성년자를 성인으로 착각해 14만원어치 술을 팔았다가 그 부모로부터 고소당해 영업정지, 과징금 등 처분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는 사연도 공개돼 공분을 샀다.

이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자영업자들의 성토가 이어지자, 내년 총선을 목전에 둔 당정은 본격 '사장님 지키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법제처에 따르면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나이 확인을 요청받은 사람이 이에 협조해야 하는 의무규정을 명문화하는 '청소년 보호법' 등 6개 법률 개정안을 지난 26일 대표 발의했다. 그간 일부 법률에만 있던 제재 처분 면책 근거를 나이 확인이 필요한 영업 전반으로 확대했다는 게 법제처의 설명이다. 유 의장은 "현재 일부 법률에만 명시된 행정상 제재 처분 면책 규정을 나이 확인이 필요한 영업 전반으로 확대해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실도 지난 20일 '2분기 국민제안 정책화 과제 15건'을 발표하며 점주가 청소년에게 속아 술이나 담배를 판매한 경우 처벌하지 않고 구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에게 술·담배를 판매한 점주가 이의를 신청하면 최종 유죄 판결 전까지 과징금 부과를 유예하도록 지자체에 안내한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조사해서 고의성이 없었고, 선의의 피해를 봤다면 전부 구제할 생각"이라며 "신분증을 확인해도 (가짜인지 몰랐거나) 그랬다면 그분들에게는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