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하이퍼루프원 좌절과 스피드의 꿈
철마가 처음 보급된 1830~1840년대 영국에서 철도는 신기술의 표상이었다. 산업혁명의 단맛을 본 근대인들은 철도의 운송 능력과 속도에 광분했다. 철도 광풍은 투기 붐까지 자아냈다. 한쪽에서는 ‘스피드’에 대한 놀라움과 경계도 대단했다. 의사·심리학자 등 당대 지식인들이 잇달아 과속 걱정 세미나를 열고 위험을 경고하는 논문도 내놨다. 초보적 증기기관차였지만 ‘마차보다 월등히 빠른 차량’이 두뇌에 미칠 영향, 태아에 미칠 파장을 논의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고속철은 시속 300㎞를 자랑하지만 아무도 과속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리 달리라고 성화다. 정차하는 역이 많다 보니 말이 300㎞이지 정작 평균속도는 170㎞를 밑돈다. 이웃 일본(500㎞)과 중국(350㎞)이 개척해가는 미래형 고속철사업을 보면 놀랍다. 이대로 가다가 한국은 무늬만 고속철일 뿐 구닥다리 저속철 국가로 뒤처질까 겁난다.

현대 고도산업사회에서 속도는 곧 돈이다. 속도야말로 시공간을 극복하는 주요한 방편이다. 물론 스피드가 주는 쾌감도 크다. F1 대회를 보면 스피드는 그 자체로 오락과 문화이고, 나름의 경제와 비즈니스 영역을 다지고 있다.

초음속 자기부상 열차 개발 회사인 버진하이퍼루프원이 올 연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그런 점에서 안타깝다. 영국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운영해 더 유명한 이 스타트업은 초음속을 목표로 달려왔다. 지하 진공 튜브에서 자기부상으로 질주하는 열차다. 2014년 창립됐는데 2016년 브랜슨이 인수했다. 미국 네바다주에서 테스트 시설을 만들고 승객을 나르는 등 성과도 냈지만 최고속도 160㎞에 도달한 뒤 더 이상 실적을 못 냈다.

초음속 기차의 꿈은 이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몫이 됐다. 그의 보링컴퍼니도 지하 곳곳을 튜브로 연결하는 하이퍼루프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성공하면 서울~부산을 20분 만에 주파한다. 대형 자본, 첨단 기술, 탁월한 인재를 3위 일체로 모아 성과를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초(超)스피드에 대한 인류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기업가가 있고 기업가정신이 있는 한….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