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이사로서 후원만 했어요. 학당 커리큘럼 개편 일을 돕다가 퇴직 후엔 끌려왔죠.”(웃음)

서당 '훈장' 된 노동 전문가…"인문학 알아야 제대로 살죠"
2005년부터 18년째 대학생들에게 인문학을 무료로 가르치는 아름다운서당의 ‘훈장’ 나영돈 전 한국고용정보원장(사진)은 이 서당의 유일한 ‘담임선생님’이다. 전 노동부 차관인 정병석 이사장을 비롯해 여러 명이 강의를 나눠 하고 있지만 매주 토요일 강의실에서 온종일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담임인 ‘훈장’의 역할이다.

이 서당에선 <국가론> <통치론> <국부론> <논어> <군주론> <노자> <장자> <삼국유사> 등 요즘 20대가 잘 읽지 않는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한다. 또 ‘저출산 고령화 추이와 청년 세대에 주는 시사점’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과 대응 전략’ ‘확증편향과 갈등 조정’ ‘교권 침해 원인과 해결 방안’ 등 논쟁이 될 만한 주제로 케이스 스터디도 한다. 20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수업을 하고 이후 5일 동안은 합숙하며 집중캠프를 진행한다. 그런데도 수업료가 0원이다. 심지어 책도 사준다.

나 훈장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20대들이 취업에만 목매지 말고 ‘문사철’(문학·사학·철학)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배웠으면 하는 게 아름다운서당의 철학이자 방향성”이라고 말했다. 20권의 책을 다 읽은 뒤 토론 방식으로 수업하는 것도 ‘자기주도적 학습’을 중시하는 정 이사장과 나 훈장의 뜻이 반영됐다. “한 번 수업을 들은 대학생들이 후배들에게 추천하는 경우도 많아요. 책을 읽는 과정은 힘들지만 토론을 통해 자기 주관을 갖게 되는 경험을 값지게 여긴 결과죠.”

아름다운서당은 이사진과 외부 후원자의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다. 기획재정부 지정 기부금 단체다. 후원금은 학생들의 책값과 강의실 대여료, 점심값 등으로 쓴다. 나 훈장은 “후원금을 늘리는 것도 중요한 과제지만 실은 훌륭한 강사를 모시는 게 쉽지 않다”며 “강의하겠다는 분들께 ‘자기 자랑은 하면 안 되고 아이들의 토론을 이끌어야 한다’고 얘기하면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강의료를 주지도 않는데 개인적인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니 강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학생뿐 아니라 강사들도 ‘토론식 학습’이 익숙지 않은 탓이다.

토론은 자유롭다. 나 훈장은 “<논어> 같은 고전을 읽어온 학생들한테 ‘현실에 안 맞는 것 3개 꼽아봐’ ‘이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건 뭐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나’ 등을 묻는다”고 했다. 읽는 책의 순서에도 아름다운서당 18년 노하우가 담겨 있다. 그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한국 대학생들이 틀을 깨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커리큘럼을 짠 것”이라고 강조했다.

훈장으로서 학생 개인의 진로 상담도 해준다. 학생들이 먼저 상담을 요청해온다고. 나 훈장은 “커리큘럼은 철저히 문사철로 하되 현실적인 진로 상담은 평일에 따로 해준다”고 말했다. 대학생만 대상으로 하는 까닭을 묻자 “인생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할 시기인데 실제 대학에선 실용주의 학문만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용·노동 전문가인 그가 저출산 같은 주제로 특강할 땐 수업시간이 시끌벅적하다. “저출산 해답을 내놓으라고 하면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것부터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까지 다양한 학생의 아이디어가 나와요. 그럼 제가 ‘30년 동안 저출산을 고민해왔는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기성세대도 답이 없으니 자신 있게 의견을 내봐라’고 해요. 답이 없는 주제를 계속 붙잡고 늘어지면서 학생들이 자기 주관을 갖게 되는 거죠.”

글=민지혜/사진=이솔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