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의 상징 '잠실 시그니엘'…사기꾼 입주에 '골머리'
“월세 등 단기 임대의 80%는 재계약이 안 됩니다.”

11일 서울 신천동 시그니엘서울 인근의 L부동산 대표는 “보여주기식으로 잠깐 빌린 뒤 높은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이사를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SNS나 유튜브에 건물 내부를 보여주는 사람 중 자가 소유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며 “시그니엘이 사기 도구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 입주민 사이에서도 불만이 높다”고 했다.

한국 최고가 오피스텔인 시그니엘에 살면서 재력을 과시하고 나아가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SG증권(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투자컨설팅업체 대표 라덕연 씨와 펜싱 국가대표 출신인 남현희 씨의 재혼 상대로 알려진 뒤 수십억원 투자사기 혐의가 드러난 전청조 씨 등이 대표적이다. ‘검경 사건 브로커’ 사건과 관련해 수사 무마를 청탁한 혐의를 받는 코인 사기 피의자 탁모씨도 시그니엘에 피해자들을 불러 투자금을 편취했다. 경찰 관계자는 “거주자 외엔 출입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사기 행각의 주 무대로 삼고 있다”며 “이곳에서 재력을 과시한 뒤 사기 행위를 하는 게 일종의 ‘공식’처럼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준공된 시그니엘은 국내 최고가 주거지 중 하나다. 국내 최고가 아파트인 서울 한남동 한남더힐, 나인원한남 등과는 주거 형태가 다르다. 주택 형태가 오피스텔이기 때문에 연 단위 월세 계약뿐 아니라 1주일 심지어 하루짜리 계약도 가능하다. 전씨 역시 3개월 단기 계약이었다. 현재 488㎡ 규모 오피스텔 임차료는 보증금 3억원에 월 2000만~2500만원 정도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높은 월세를 견디지 못해 계약이 끝나기 전 야반도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시그니엘 임대인 B씨는 “소위 ‘먹튀’를 막기 위해 2017년 1억원이던 보증금을 3억원으로 올렸다”고 말했다.

수사당국은 입주민만 출입할 수 있는 시그니엘 내부에서 투자 설명 등 ‘영업’ 행위가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그니엘 내부엔 컬처존 등 4개 영역으로 구분된 커뮤니티 시설과 갤러리 라운지, 미팅룸 등 내부인 전용 공간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서로 신뢰를 쌓기 위한 방식으로 시그니엘이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부의 과시 수단이 과거 자동차에서 부동산으로 옮겨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동차는 렌트 등 소유 수단이 늘면서 영향력이 많이 낮아졌다”며 “초고가 오피스텔 등이 부를 과시해 상대를 현혹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