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조원이 넘는 빚더미에 시달리는 한국전력이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 자회사 6곳에 연내 중간배당을 해달라고 요구해 논란이다. 전기요금 땜질 인상이 또 다른 편법·꼼수를 부르는 악순환이다. 한전이 초유의 중간배당을 추진하는 건 한전채 발행금액이 한전법이 정한 한도(자본금+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올해 6조원가량의 순손실을 감안하면 내년 한전채 발행 한도는 75조원 수준으로 축소되는데, 지난 10월 말 현재 발행 잔액만 79조6000억원에 달한다. 내년에는 한전채를 추가 발행하기는커녕 기존 채권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중간배당 요구는 한전 자본금을 가능한 한 부풀려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려는 꼼수에 다름 아니다. 한전이 예상하는 중간배당 규모는 최대 4조원으로 알려졌다. 이들 6개 자회사가 지난해 한전에 지급한 배당금(904억원)의 40배가 넘는다. 이들이 한전 요구를 들어주려면 올해 영업이익을 모두 중간배당 하는 것은 물론 배당가능이익까지 손대야 한다. 상법상 연간 누적 영업이익을 넘는 중간배당은 배임 소지도 있다.

정부는 올해 전기요금을 ㎾h당 51.6원 올려야 한전 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실제 인상은 26원 정도에 그쳤다. 4분기에는 일반 가구와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전기료는 그대로 둔 채 대기업 요금만 올렸다. 물가와 서민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라고 하지만 문제를 미룰수록 부작용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최근 울산 정전사태에서 보듯 한전이 천문학적 적자 탓에 변전소, 송·배전망 등에 투자를 늦추면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한전 위기는 발전 자회사와 협력업체 부실로 이어져 전력 생태계 전반을 뒤흔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회에서 재차 입법을 통해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는 ‘한전 부실 키우기 법’에 다름 아니다. 전기요금 결정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하루 이자만 118억원에 달하는 한전의 파탄과 전력 생태계 붕괴라는 재앙적 결과를 막기 어렵다. 정치 논리가 아니라 ‘원가 연동’ ‘수요 적기 반영’ 같은 시장 원리에 따른 가격 결정 시스템 도입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