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정된 12개 플랜트 사업장의 52조원 규모 공사가 현장 근로자 확보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애초 외국인 근로자 허용을 검토하던 정부가 강성 노조의 반발을 의식해 결정을 미루고 있어서다. 인력 확보 차질 시 샤힌 프로젝트를 비롯해 주요 플랜트 공사가 줄줄이 공기 지연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와 플랜트 건설 관련 협회, 기업 등은 지난달 두 차례 ‘플랜트 분야 외국 인력 허용 회의’를 열었지만 노조의 반대에 막혀 결론을 내지 못했다.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외국 인력 도입은 정부 외국인력정책위원회와 실무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하는데 당연직인 양대 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반대하고 있어 결정이 내년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과 발전, 제철 산업은 국가 보안 시설로 분류돼 2007년부터 외국인 고용이 금지됐다. 플랜트 분야는 올해만 부족 인력이 1만2688명에 달할 정도로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필요 인력은 14만6788명이었는데 13만4100명이 공급됐다.

내년엔 한국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설비를 짓는 샤힌 프로젝트와 20조원을 투입하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등 대규모 공사가 시작돼 인력 부족 현상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포항과 충청권에서 2차전지단지 플랜트 공사에 들어가고, 전남과 수도권에선 15조8000억원 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첫 삽을 뜰 예정이다. SK지오센트릭이 1조5000억원을 들여 짓는 플라스틱 재활용 시설과 발전소 7기도 착공한다. 내년 플랜트 부문 공사는 12개 사업장에서 최소 52조2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는 원청과 하청 가릴 것 없이 외국 인력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10월 실적 50억원 이상 157개 회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2.9%인 113곳이 외국 인력 고용 의사를 보였다.

업계는 정부에 용접과 배관 공사를 보조할 수 있는 단순 인력이라도 충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용접 전문가 3~5명으로 구성되는 기능 인력 한 팀당 1~2명의 외국인만 보내줘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가스 용량 체크 및 청소, 화재 관리, 간식 배달 정도만 해도 큰 도움이 된다”며 “어차피 한국 사람이 선호하지 않는 분야여서 내국인 일자리 간섭은 없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도 외국 인력 도입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대 노총의 반대가 걸림돌이다.

업계에선 플랜트건설노조가 외국 인력 도입을 이유로 파업이라도 하면 진행 중인 공사마저 ‘올스톱’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외국 인력 도입을 변경하기 위해선 정부와 업계 노조 등이 참여한 실무위원회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국가 보안시설로 분류된 상황에서 내국인 일자리를 빼앗아 가며 무리하게 외국인을 허용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노조와 상의 없이 밀어붙이면 강경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반발했다.

김우섭/곽용희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