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뉴스1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뉴스1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철 지난 '노동론'을 꺼내 들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는데, 그의 발언에 많은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은 "사무직들은 놀고먹는 인간들이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치권에 따르면, 송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채널A 라디오쇼에 출연해 "소년 급제라는 게 참 위험한 것이다. 어렸을 때 사법고시 합격해 검사하면서 갑질하면서 노동을 해봤나, 땀을 흘려 봤냐"며 "저 송영길은 아시다시피 7년 동안 노동 현장에서 땀 흘리면서 일해 왔다"고 말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된 한 장관을 '노동을 해보지 않은 자', 자신은 '노동을 해본 자'로 구분한 것이다. 송 전 대표의 이러한 인식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송 전 대표는 1984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1985년, 집시법 위반 등으로 서대문 구치소에서 옥살이를 했고, 졸업한 이후에는 인천에서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가 말한 '7년'의 시기는 이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그는 이때 대우차 르망공장 건설 현장 배관용접공, 택시 기사 등을 하며 노동운동을 했다.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인천 지역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6대 총선부터 내리 당선되며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송 전 대표가 한 장관을 향해 "어렸을 때 사법고시 합격해 검사하면서 갑질했다"고 했는데, 정작 송 전 대표 역시 만 33세에 국회의원으로 '소년 급제'한 셈이다.

사무실에서 서류 더미에 파묻혀 일한 한 장관과 노동운동을 하다 국회의원이 된 송 전 대표. 대표적 '운동권' 출신 정치인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내며 한 장관을 지적한 송 전 대표의 발언은 설득력이 없었다.

송 전 대표가 노동운동을 하던 그때와 지금의 산업구조는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지난해 대한항공 회의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화이트칼라 비중은 1963년 18.3%에서 2021년 기준 41.5%로 현저히 높아졌다. 같은 기간, 송 전 대표가 '노동'의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블루칼라 취업자는 40.3%에서 36.0%로 낮아졌다.

산업구조가 이렇게 바뀌었는데, 송 전 대표의 사고는 여전히 '운동권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돌연 '일하지 않는 자'로 찍힌 전국의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은 "사무직들은 노동하는 게 아니고 놀고먹는 인간들이냐", "운동권 출신은 참 단순해서, 육체적으로 제공한 근로만 노동으로 생각하나 보다", "민주당의 혐오 DNA가 또 발동했다. 화이트칼라 혐오 발언이다", "검사가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냐? 노동이 아닌데 국가에서 왜 월급을 주냐"는 반응을 보였다.

'운동권 자부심' 무색…정치권에선 '설거지론', '청산론'이 대세

최근 정치권에서는 '운동권' 하면 '설거지론', '청산론' 등의 용어가 따라붙는다. 온라인에서는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 70여명의 이력이 적힌 명단이 돌기도 했다. '기여한 것에 비해 많이 누리셨다'는 게 이 명단을 돌리는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운동권 자부심'을 잃지 않은 송 전 대표의 '돈 봉투' 의혹이 86그룹의 도덕성에 흠집을 낸 결정적 사건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송 전 대표의 돈 봉투 의혹과 관련 "송영길 전 대표는 386 정치인, 운동권 출신 정치인 중 대표 주자"라며 "이른바 386 정치인의 도덕성까지 망가뜨리는 아주 결정적 사건"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원내에서도 내년 총선의 시대정신으로 '운동권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소수정당인 '시대전환'에서 국민의힘 소속이 된 조정훈 의원은 "586 운동권 퇴진이 내년 총선의 1차 목표"라며 "586 운동권 설거지가 되지 않으면 청년 정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송 전 대표 같은 사람들이 어릴 때 운동권 했다는 것 하나로 사회에 생산적인 기여도 별로 없이 자그마치 수십년간 자기 손으로 돈 벌고 열심히 사는 대부분 시민 위에 도덕적으로 군림했다. 민주화 운동을 한 분들이 엄혹한 시절 보여준 용기를 깊이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 이분들 중 일부가 수십 년 전의 일만 가지고 평생, 전 국민을 상대로 전관예우를 받으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민주화는 대한민국 시민 모두의 공이었다고 생각한다."

'노동해본 적이 없다'며 송 전 대표의 저격 대상이 된 한동훈 장관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 국민들은 점차 '진짜 생산적 기여도 해본 적 없는 사람'으로 '운동권 정치인'을 지목하고 있는 셈이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