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
좀비는 왜 저승에 못 가고 이승을 배회하는가
들판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살아있는 사람들을 쫓는 귀신들. 조지 로메로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 나온 좀비들의 모습이다.

영화에서 기괴한 모습으로 느릿느릿 움직였던 좀비는 당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수많은 대중매체에서 좀비는 혼 없는 유령으로 묘사됐으며 이제는 한국 드라마·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됐다.

더는 서양만의 전유물이 아닌 존재가 된 것이다.

사실 좀비의 출발은 카리브해 사탕수수밭이다.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은 자살로 비참한 생을 끊고자 했다.

백인 농장주들은 자살한 노예들은 서아프리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이티의 황량한 들판에서 영혼을 잃고 방황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며 겁박했다.

미국 작가 켄 제닝스는 신간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세종)에서 좀비의 기원을 카리브해 연안으로 보며 "정신없고 뇌에 굶주린 좀비들이 처음에는 그저 집에 가고 싶었던 사탕수수 농장 노예였다는 사실을 알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좀비는 왜 저승에 못 가고 이승을 배회하는가
책은 여러 문화권의 사후 세계를 그린다.

중국부터 북유럽까지 다양하다.

가령 중국에선 사람이 죽으면 황천에 간다.

그곳에는 열 곳의 재판소가 있고, 판관들은 재판소에 온 사람들의 죄를 심판한다.

처벌은 대단히 잔인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벌은 자신이 살던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탑에 갇히는 것이다.

그곳에서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거나 자신이 힘들게 번 재산을 탕진하며 서서히 자식이 망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황천에서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면 '음'(陰)의 세계에서 귀신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다 지치면 망각의 차(맹파탕)를 마시고 환생하면 된다.

고대 이집트에선 망자가 죽으면 '두아트'로 간다.

거기에 가려면 여러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벌레와 시체가 가득한 방, 악어가 득실대는 방, 불의 호수 등 다양하다.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 나오는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렵다고 한다.

좀비는 왜 저승에 못 가고 이승을 배회하는가
저자는 이처럼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사후세계를 조명한다.

수천 년 동안 전 세계의 신화, 종교, 책, 영화, 텔레비전, 음악, 연극 등에 그려진 사후 세계 100곳을 간추려 그곳의 모습과 존재 이유 등을 설명한다.

고현석 옮김. 45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