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여대 수시 논술 치른 학생들 > 26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를 치른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빠져나오고 있다. 교육계에선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킬러 문항’ 배제로 비교적 난도가 낮을 것이란 예측과 달리 ‘불수능’으로 출제되면서 논술 고사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솔 기자
< 이화여대 수시 논술 치른 학생들 > 26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2024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를 치른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빠져나오고 있다. 교육계에선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킬러 문항’ 배제로 비교적 난도가 낮을 것이란 예측과 달리 ‘불수능’으로 출제되면서 논술 고사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솔 기자
올해 대입시험이 끝난 뒤 서울 대치동 일대 논술학원들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킬러문항’ 배제에 기대를 걸었던 수험생들이 예년보다 어려운 ‘불수능’에 대거 논술학원을 찾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사교육 부담을 덜기 위한 킬러문항 배제가 n수생 급증, 논술학원 러시 등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술 파이널 특강’ 수강생 30% 급증

26일 학원가에 따르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대치동 일대 학원의 ‘논술 파이널 특강’ 수강 신청자가 전년 대비 약 30% 급증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하는 반의 경우 1주일 수강료가 6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학원장이 6~8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소수정예 논술은 1회(3시간 기준) 30만원에 달한다. 고액임에도 고지 하루 만에 조기 마감됐다. n수생 자녀를 둔 대치동의 한 학부모는 “시험 결과에 불안을 느껴 큰아들이 예전에 다닌 논술학원을 알아봤는데 조기에 마감돼 자리가 없었다”고 했다.

고3 수험생들은 학기 중에도 학교 대신 논술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이를 허용하는 고등학교도 적지 않다. 경기도에서 대치동 일대 논술학원을 매일 오가는 학생도 크게 늘었다. 경기 용인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장모양(18)은 “수시 전형 6개를 모두 논술로 지원했고, 수능이 어렵게 나와 논술 대비를 더 철저히 해야겠다고 생각해 대치동 유명 학원을 선택했다”며 “학교 기말고사가 있는 날은 오전에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학원으로 갔고 주변 중상위권, 상위권 친구들 역시 비슷하게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학별 고사에 응시한 비율은 예년보다 높아졌다. 서강대 논술고사 응시율은 55.5%로 전년 대비 3.6%포인트 올랐고, 경희대도 58.9%로 1.4%포인트 뛰었다. 건국대는 전년 대비 3.0%포인트 높은 57.3%, 동국대는 4.2%포인트 오른 53.3%를 기록했다. 불수능으로 정시모집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서는 점수 산정 등 변수가 많아 정시모집 불확실성이 크니 수시에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재수생은 “수능이 너무 어렵게 나와 다들 논술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등급 커트라인이 낮아졌다고 해도 등급 최저기준 만족 여부를 확신할 수 없어 수능 후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킬러문항’ 배제에도 사교육비 부담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에 칼을 빼들었지만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은 되레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킬러문항 배제 결정 이후 쉬운 수능 기대로 n수생은 올해 역대급으로 늘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수능에 원서를 낸 50만4588명 가운데 n수생은 17만7942명(35.3%)이었다. 입시업계에서는 올해 반수생이 8만9642명으로 전년(8만1116년) 대비 10.5% 증가한 것으로 추정한다.

반수생·n수생이 늘면서 학원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서울 목동의 한 대형학원 관계자는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기대한 n수생이 늘면서 6월 모의평가 이후 반수생 문의가 예년에 비해 1.5배 정도 급증해 2개 반을 증설했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이 사교육 부담 경감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대학 서열화 등 근본적 문제는 그대로 둔 채 킬러문항 배제로 사교육을 경감하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수생 증가세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임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와 맞물려 의대 진학을 위한 상위권 이공계 대학 반수생까지 가세해 반수생 증가 양상이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