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공무원 'IT 무지'가 낳은 전산망 마비
‘지방행정공통시스템은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최근 5년간 연평균 1만7113건 장애가 발생했거나 기술 지원을 요청함.’

지난 17일 행정 전산망 먹통 사태가 벌어진 뒤 정부가 올초 발표한 ‘디지털플랫폼정부 실현 계획’ 문서를 다시 열어봤다가 깜짝 놀랐다. 이것은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 수준이다. 무슨 문제가 생길지 정부는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작성한 계획서 33쪽은 구체적으로 ‘광역지자체 행정정보시스템(시도)은 2004년에 구축되었고, 기초지자체 행정정보시스템(새올)은 2006년에 구축되었다’고 짚었다. 이어 ‘장비의 87%는 내구연한이 경과’했고, ‘시스템 노후화로 신기술 적용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적었다. 언제든 먹통이 돼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어 다양한 해법과 멋진 계획을 수십 쪽에 걸쳐 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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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문제는 그런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에 관한 신뢰다. 먹통 사태에서 보여준 행정안전부 관료들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무성의하다. 정보기술(IT)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있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침부터 문제가 생겼는데 하루 종일 회의만 하다가 오후 6시 업무 종료를 20분 남겨두고야 ‘민원 내용을 수기로라도 적어뒀다가 소급 처리하라’는 방침을 내놓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원인을 찾았다는 주장도 성급했다. 19일 행안부는 네트워크 장비(L4)와 인증시스템(GPKI)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문제가 해결됐다고 자신했다. IT업계에선 그 누구도 고개를 쉽게 끄덕일 수 없는 해명이었으나 행안부는 더 이상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공공 IT 시스템이 잘 돌아가지 않는 근본 원인을 대기업의 참여 제한과 같이 ‘수주업체의 역량’에서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대기업을 배제한 데서 사태의 뿌리를 찾는다면 나머지 중요한 요인들을 놓칠 수 있다. 게다가 삼성 SK 등 대기업은 더 이상 공공 시스템 구축·통합(SI)이나 유지보수 시장에 관심이 없다. 클라우드 등 돈 되는 쪽으로 가고 있어서다.

IT업계가 지목하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발주자의 역량 부재다. 발주하는 쪽에서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고, 이를 해결할 최적의 방안을 찾고, 이해관계자 간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은 이런 프로젝트매니저(PM) 노릇을 안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못 한다고 보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결정권자는 전문성이 없고 전문가는 결정권이 없다. 수많은 공무원이 IT에 대해 ‘나는 몰라도 된다’ ‘시키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쌓이고 쌓여 문제가 생겨도 아무도 책임지지도 않고, 책임질 줄도 모르는 사태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그 대표적인 조직이 행안부다. 각종 정부의 공공 시스템 발주와 관리를 담당하지만 IT 문제는 ‘남의 나라 일’이다. 최근 온라인 익명게시판에 이번 전산망 먹통 사태 책임을 어느 조직에서 져야 하느냐는 질문이 올라왔는데, 한 공무원의 답변이 걸작이다. “행안부는 책임 따위 지지 않아. 10번째 하청(업체)의 10번째 막내가 잘리겠지.” 행안부를 정부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로 바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리더가 분명하지 않은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발주처→수주업체→하청업체→재하청업체로 이어지는 사슬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요구사항은 불어나고 시스템에는 쓸데없는 기능이 덕지덕지 붙는다. 업무의 본질인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근로시간이나 근무태도 등 엉뚱한 것으로 상대가 제값을 하는지 평가하려는 불합리가 횡행한다.

불투명한 지시로 인한 리스크를 아래로 아래로 밀어내면서 서로가 서로를 피곤하게 하는 ‘갑질 생태계’가 형성된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구글에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갑질’이 뜨는데, 막상 그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직원들은 “(관계기관) 공무원들이 IT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꾸 지시해 힘들다”고 커뮤니티에 하소연하는 그런 생태계다.

디지털플랫폼정부 실현 계획을 다시 살펴본다. ‘모든 데이터가 융합되는 디지털플랫폼 위에서 국민, 기업, 정부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정부.’ 듣기에 참 좋다. 하지만 공무원이 바뀌지 않는다면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