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서 일하면 돈 더 줄게"…폭행에 멍든 24세 청년의 꿈
사건번호: 대법원 2023도6953
불법 도박사이트 관리 프로그램 개발 맡겨 … 개발 더뎌지자 폭행·고문
야구방망이 등 둔기로 무차별 폭행, 사망 후 리조트 주차장에 사체 유기
대법원 ‘파타야 살인사건’에 징역 17년형·전자장치 10년 부착 확정


태국 파타야에서 불법 도박사이트 관리를 맡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이른바 '파타야 살인사건'의 주범이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의 중형을 확정받았다. 만 24세인 피해자가 태국 현지의 도박사이트 사업장에 감금된 채 몇 달간 폭행과 고문에 시달리다가 끝내 사망했고, 사체는 주차장에 버려진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8년 7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전말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법원 제1부는 지난 9일 살인·시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에게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라고도 명령했다.

"고수익 보장해주겠다"며 접근

태국 방콕에서 다수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A씨는 도박 사이트 통합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줄 프로그래머를 찾다가 국내에 있던 피해자 B씨를 소개받았다. A씨는 2015년 6월 B씨를 고용해 통합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개발이 더디게 진행되자 B씨를 태국으로 불러들였다. A씨 일당은 당시 "해외 근무를 하며 고수익을 보장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그 해 7월 방콕으로 넘어와 프로그램 개발을 이어갔다. 그런데 A씨가 프로그램 개발을 서둘러 마무리하라고 요구하면서 B씨에게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폭행을 견디다 못한 B씨는 10월 초 머물던 오피스텔을 빠져나와 공항으로 도망쳤으나 A씨의 공범들에게 발각돼 붙잡혔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이 일이 일어난지 얼마 안 돼 B씨와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또 다른 피해자가 한국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A씨는 도박사이트 사무실과 숙소를 공범이 거주하는 건물로 옮겨 도박사이트를 계속 운영했다. A씨는 이 무렵부터 B씨가 도박사이트의 회원정보, 베팅내역 등을 몰래 빼돌린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국내에 있는 지인에게 원격으로 B씨가 사용하던 컴퓨터에 접속해 저장된 정보를 파악해볼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B씨가 파일공유 사이트에 구타를 당하는 소리를 녹취한 파일 등을 공유한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이로 인해 도박사이트의 사무실 주소가 노출됐다고 판단하고 사무실을 태국 파타야로 옮기기로 했다. 그는 공범인 C씨의 SUV 차량을 타고 파타야로 이동하면서 B씨를 심하게 폭행 및 고문했다. 2차례 이상 차량을 정차시키고 B씨를 내리게 한 후 둔기로 마구 때렸다. B씨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면서 결국 사망했다. A씨는 한 리조트 주차장에 B씨의 사체를 버려두고 도망쳤다.

범행 8년 만에 중형 확정

A씨는 베트남으로 도피했다가 경찰의 인터폴 적색수배와 공조수사 끝에 붙잡혔다. 그는 2018년 4월 국내로 송환됐다. 이 당시 마약 복용 등 다른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6개월을 확정받은 상태였다.

1·2심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공범인 C씨와 함께 이동하는 과정에서 야구방망이 등 둔기로 피해자의 가슴, 복부 등 신체 여러 부위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해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파타야로 이동하면서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음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면서도 이를 용인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2018년 4월 태국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다 자신이 고용한 한국인을 살해하고 베트남으로 도피한 피고인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8년 4월 태국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다 자신이 고용한 한국인을 살해하고 베트남으로 도피한 피고인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씨는 항소심 판결 후 "C씨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 번역본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의 증거로 삼은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하며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고인은 당초 이를 항소 이유로 주장했다가 원심 제5회 공판기일에서 철회했다"며 "원심이 직권으로 심판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고심에서야 하는 주장은 적법한 상고 이유가 되지 못하고, 증인신문조서 번역본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로도 원심의 판단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8년 만에 대한민국 법원이 내놓은 최종 결론이다.

공범인 C씨는 사건 발행 직후 태국 경찰에 자수해 2016년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현지 교도소에서 4년6개월을 복역하고 작년 4월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그 후 살인·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2심에서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